정규 3집 ‘3’ 발표···11곡 모두 작사·작곡
“AI 음악은 때깔 좋은 모조품 음식 같아”

“창작하지 않으면 되게 허무해질 거 같아요. 자는 거, 먹는 거 제외하곤 창작에 대한 욕구가 인간의 최우선 욕구 같아요. 우린 창작하기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그거까지 인공지능(AI)한테 주면 (인간의) 존재 의미가 없어져요.”
정규 3집으로 돌아온 싱어송라이터 일레인(본명 김주은)은 이같이 말했다. ‘창작’을 말할 때 눈을 반짝이던 그는, 이번 앨범에 실린 11곡 모두 작사·작곡했다. 그는 2017년 경향실용음악콩쿠르에서 은상을 수상했고, 이듬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슬픈 행진’을 불렀다. 지난 14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그를 만났다.
정규 1집 <1>, 2집 <2>에 이어 이번 3집의 이름은 <3>이다. 이로써 ‘일기장 3부작’이 마무리됐다. 왜 일기장일까. “저는 ‘이번 앨범에서 이걸 얘기할 거야’ 하는 의도를 갖고 (곡 작업을) 하지 않아요. 하나의 언어로, 자기 표현의 하나로 음악을 하고 있어요. 우리가 슬픈 일이 있거나 기쁜 일이 있으면 일기장에 막 쓰잖아요. 전 그걸 음악으로 해요. 일기장이 따로 없고, 앨범이 제 일기장인 거죠.”
날것의 마음을 휘갈겨쓰는 일기장처럼 모든 수록곡을 빠른 시간 안에 썼다. 그는 “원래 곡을 빨리 쓰는 편”이라며 노래와 멜로디가 대부분 동시에 떠오른다고 했다. AI가 척척 곡을 만들어내는 시대, ‘천재형’ 싱어송라이터의 빠른 속도는 더 이상 장점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손으로 쓴 노래’의 가치를 믿는다.
“AI로 만든 음악은요, 그냥 때깔 좋게 만든 모조품 음식 같아요. 식당에 가면 입구에 메뉴 설명용으로 전시해놓은 음식 있잖아요. 맛있어 보일 수는 있는데 실제로 이걸로 배가 차진 않죠. 조금만 들여봐도 ‘가짜네’ 느낌도 있고요.”
<3>에는 일상 속 여러 단상을 담백한 선율과 노랫말로 담아낸 곡들이 실렸다. 코로나19 유행 시기 무인도로 도망가고 싶어서 쓴 곡(Let’s Move to an Island), 영화 <내 사랑>을 보고 쓴 곡(Maudie), ‘미안하다’는 말에 대한 생각한 곡(I’m Sorry Too) 등 이렇다 할 기준 없이 그때그때의 감정을 포착하는 데 충실했다.
일레인이 가장 아끼는 수록곡은 ‘I Don′t Wanna Know’다. 직역하면 ‘나는 알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엄마를 잃은 상실감을 알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노래다. “아빠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뒤로 엄마랑 저, 이렇게 둘만 (세상에) 남게 됐죠. 벌써 10여년이 지났고, 불가피하게 겪는 상실도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잖아요. 근데 문득 한 2년 전에 갑자기 진짜 너무 무서울 정도로, 막 어린 아이가 된 것처럼, ‘엄마도 없어지면 어떡하지’ 두려운 거예요.”
그는 ‘아픔을 겪으며 단단해진다’는 말이 싫어졌다. “괜찮아지고 싶지 않은 거예요. 안 성숙해져도 되고, 안 강해져도 되니까 (상실을) 안 겪고 싶은 거예요. 그냥 엄마를 잃는 것 자체를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의 곡이죠.” 앨범 작업기간 내내 엄마에게 이 곡을 들려주지 않다가, 발매 뒤 처음으로 함께 들었다. 그는 “이거 사실 엄마 얘기야”라고 고백했다. 엄마는 울었다.
2015년 첫 디지털 싱글 ‘Won’t you Stay‘로 데뷔한 그는 2016년 CJ문화재단의 인디뮤지션 지원사업 ‘튠업’ 17기로 선정됐고, 2017년 경향실용음악콩쿠르 싱어송라이터 부문으로 참가해 입상했다. 각종 드라마의 OST와 유독 인연이 깊다. 정식 데뷔 전인 2014년 <연애의 발견> OST를 불렀고, 이후 <미스터 션샤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사이코지만 괜찮아> 등을 거쳐 올해 <보물섬> <미지의 서울> OST도 불렀다.
특히 <미스터 션샤인> ‘슬픈 행진’은 그에게 기회를 준 곡이다. “대학생 때 보컬 전공 교수님께서 ‘용돈 벌이로 가이드 한번 해볼래’ 하셔서 ‘네’ 이러고 갔어요. 한번 해봤거든요. 근데 음악감독님 마음에 들었나봐요. 바로 ‘이 사람 쓰겠다’ 하셨어요. 그 뒤로 쭉 ‘OST(를 맡는) 길’이 열렸어요.” 가창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는 “안 믿었다. 의심했다”며 웃었다.
그의 예명 ‘일레인’에는 ‘빛’이라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자신의 태명이 ‘태양’이기도 했고, 싱가포르 유학시절 영어 이름으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화려하게 빛나는 사람보다, 잔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진솔한 가수이고 싶어요.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 항상 있는 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