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공론장, 민주주의·공화주의 위협한다

2025-05-26

우리 사회의 정치적 양극화는 단순한 견해 차이를 넘어 이제 혐오와 불신의 수준에 이르렀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화합과 통합의 목소리는 묻혔고 대신 조롱과 증오의 언어가 가득하다. 확증편향은 강화되고 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진영 간 대화는 사실상 사라졌고, 무엇이 옳고 좋은지에 대한 사회적 성찰은 보이지 않는다. 동일한 뉴스라도 다르게 수용된다. 관점의 차이뿐 아니라 사실(facts) 자체도 충돌한다. 공론장에서 합의를 찾기는 어렵다. 대통령 선거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경쟁임에도 선거 기간 내내 상대를 향한 비하가 가득하다. 감동은 자취를 감춘 형국이다.

확증 편향이 부른 소통의 실종

알고리즘, 진실보다 클릭수 관심

분노 증폭하는 디지털 민주주의

홍수 속 마실 물은 없는 공론장

우리 사회에서 소통의 양극화는 정치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 소통의 위기는 정치 지도자들의 갈등과 반목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방 이후 좌우의 대립, 권위주의 시절의 억압과 저항, 민주화 이후의 정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치 공간은 늘 극단적 충돌의 연속이었다. 해방 8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정치인들은 상대를 악마화하며, 증오와 적대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권력을 향한 욕망은 끈질기고 노골적이다. 그러나 권력을 통해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여야의 대선 공약에서 실제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치권의 극한적 대립은 공론장에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우리의 공론장은 정파성에 물들어 있다. 미디어 정파성은 전통 매체를 넘어 이제 유튜브·포털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으로 확장되었다. 유튜브와 포털은 정보 제공량에서 전통매체를 넘어서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4’에 따르면 국민 절반은 유튜브로 뉴스를 접한다. 포털을 언론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60%에 이른다. 알고리즘은 그러나 이용자에게 유사한 콘텐트를 반복적으로 제공해 편향된 시각을 심화시킨다. 다양한 관점과 사실을 접할 기회를 차단한다. 동시에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콘텐트를 우선 노출해 분노를 증폭시킨다. 시민들은 이러한 편향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알고리즘이 짜 놓은 세계 안에서 진영 논리에 휩쓸리고 있다.

알고리즘이 설계한 공론장에서는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다. 알고리즘의 관심은 오직 ‘더 많은 클릭’과 ‘더 긴 체류 시간’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진실(truth)을 ‘이성적 진실(rational truth)’과 ‘사실적 진실(factual truth)’로 나눈다. 전자는 과학·수학처럼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진실이며, 후자는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개입되는 정치적 진실이다. 유튜브에서 제공되는 과학기술, 의료, 음악 같은 비정치적 정보는 전자에 해당한다. 알고리즘이 주는 이성적 진실은 유익하고 편리하다. 반면 사실적 진실은 다양성과 논쟁을 필요로 한다. 같은 사실이라도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기에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알고리즘은 정치적 진실을 탐구하는 데 결코 유용한 도구가 아니다. 알고리즘은 정치적 진실을 확보하는데 관심이 없다. 논쟁의 맥락이나 다양한 해석을 의식적으로 차단한다. 사실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논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지 못한다.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 전할 뿐이다. 클릭 수를 높일 자극적 콘텐츠는 반복해서 노출시킨다. 마케팅과 수익에 집중할 뿐이다. 왜곡되고 편향된 콘텐츠일수록 알고리즘은 더 자주, 더 널리 퍼뜨린다. 그 결과, 우리의 공론장은 지금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다양성은 왜곡되고 공화주의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 원리는 훼손되고 있다.

다양한 정보가 골고루 제공되지 않기에 알고리즘에 기반한 소통은 편식과 같다. 음식 편식이 신체 건강을 해치듯 정보의 편식은 우리의 생각을 병들게 한다. 정치적 진실을 얻기 위해 알고리즘에 의존하는 것은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찾는 연목구어(緣木求魚)와 다를 바 없다. 알고리즘 플랫폼은 사람의 인식 구조 자체를 바꿔 놓는다. 그것은 마치 볼록렌즈나 오목렌즈로 세상을 보는 것처럼 현상을 체계적으로 왜곡한다. 알고리즘 편향이 미치는 영향은 개별 언론의 정파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우리의 공론장은 지금 알고리즘 논리를 경쟁적으로 추종하고 있다.

정치 정보는 넘치지만, 정치적 진실을 향한 토론과 설득의 자리는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정치인의 욕망은 걸러지지 않은 채 전달되고, 시민은 성찰과 숙고의 기회를 잃어버렸다. 디지털 공론장은 우리 모두를 각자의 진영 속에 꼭꼭 가두고 있다. 알고리즘은 공론장을 왜곡하고 있다. 지금의 공론장은 “홍수 속에 정작 마실 물은 없는” 상황이다. 알고리즘 공론장은 자유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근간을 위협하고 있다. 알고리즘의 편리함을 넘어서 공론장의 회복과 미디어 생태계의 건강성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손영준 국민대 미디어 광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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