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까지 뻗친 생명력…그 아래 곰팡이가 받치고 있다

2024-11-26

바오밥나무(바오바브나무)를 처음 듣고 본 건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였다. 나는 이름에 ‘밥’이 들어 있는 나무가 무척 마음에 든다. 그런데 정작 어린 왕자는 바오밥나무를 재앙적인 존재로 여긴다. 소행성 B612에 살고 있는 어린 왕자는 이렇게 말한다. “바오밥나무를 방치하면 온 행성을 집어삼킬 만큼 커져 버린다. 그것을 어릴 때 미리 뽑아내지 않으면 나중에는 늦는다.” 생텍쥐페리는 바오밥나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삶과 환경을 꾸준히 돌보는 책임감을 강조했겠지만 독자인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 압도적인 크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사진작가 신미식은 바오밥나무를 처음 마주한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바오밥나무를 보는 순간 그 크기와 규모에 압도되어 사진을 찍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같은 자리에서 한참 동안 나무를 바라봤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나무가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기를 내어 바오밥나무에 손을 얹고 마음으로 허락을 구했다. 내가 오랫동안 간직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바오밥나무를 품에 안을 수 없어 몸을 밀착하고 얼굴을 묻었다. (…) 이 척박한 땅, 같은 자리에서 수천년을 견뎌온 나무의 위대함이 온몸에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신미식 작가가 찍은 바오밥나무 숲은 다른 세계에서 온 듯한 초현실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키가 30m에 달하는 거대한 나무들은 마치 땅에서 하늘로 뻗어가는 기둥처럼 우뚝 솟아 있다. 매끈한 줄기는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은은하게 빛나며, 꼭대기에 펼쳐진 나뭇가지들은 거대한 우산처럼 펼쳐져 있어서 독특한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바오밥나무는 몇 세기를 살아온 생명의 기록이다. 메마른 대지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바오밥은 외형만큼이나 신비로운 생존 전략이 있다.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건조한 계절에도 이 나무들은 꿋꿋이 서 있다. 그 비결은 몸속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독특한 줄기 구조에 있다. 12만ℓ의 물을 저장하는 줄기는 자연이 만든 거대한 물탱크다. 이 물은 가뭄 기간 동안 동물들과 지역 주민들에게도 생명을 이어주는 귀중한 자원이 된다. 마다가스카르 주민들은 나무에서 물을 직접 끌어내어 생존에 활용한다.

해 질 무렵 바오밥 숲이 장관을 연출한다.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면서 붉은빛이 퍼질 때, 바오밥나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나무의 웅장한 실루엣은 붉게 물든 하늘과 대비되어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 풍경을 본 이들은 바오밥을 ‘생명의 나무’로 부르게 된다.

마다가스카르의 이 고유한 풍경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다. 이 땅에서 바오밥은 인간과 자연 모두를 지탱하는 생명의 중심이다. 바오밥나무는 다양한 동물들의 먹이이자 쉼터다. 나무껍질, 잎, 꽃은 곤충, 새, 여우원숭이의 먹이다. 주민들은 열매를 갈아 음료를 만들거나 식재료로 사용한다. 나무 속의 구멍은 박쥐, 새 그리고 파충류에게 은신처를 제공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바오밥나무가 죽은 조상의 영혼을 상징하며, 마을 공동체의 일원처럼 존중받는다. 바오밥나무는 단순히 하나의 나무가 아니라 환경, 생명, 문화의 연결 고리로 작용하는 생존의 아이콘이다.

바오밥나무를 처음 본 유럽인들은 뒤집어진 나무(upside-down tree)라고 불렀다. 뿌리처럼 넓고 거대한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형태가 마치 나무가 뒤집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생존에 큰 이점을 준다. 두꺼운 줄기가 거대한 물 저장 공간이 된다. 바오밥나무는 잎이 적고 계절에 따라 낙엽이 지면서 증산 작용으로 인한 수분 손실을 줄인다. 굵고 직선적으로 자라 마치 뿌리처럼 보이는 넓고 평평하게 뻗은 가지는 최대한 햇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동시에 태양의 열을 효율적으로 분산시켜 나무 전체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아준다. 줄기와 가지는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유연한 섬유질로 이루어져 있어 강풍이나 폭풍에도 쉽게 부러지지 않는다. 대신 목재로는 쓸모가 없다. 덕분에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바오밥나무가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비결은 보이지 않는 동반자 때문이다. 그 주인공은 균근. 즉 뿌리곰팡이다. 뿌리곰팡이는 바오밥나무의 뿌리와 공생하며 나무가 흡수하기 어려운 영양분, 특히 인과 질소를 공급한다. 또 뿌리곰팡이는 나무의 뿌리 표면적을 넓혀 수분 흡수를 돕고, 병원균으로부터 뿌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한다. 뿌리곰팡이가 없다면 바오밥나무는 영양분과 수분을 제대로 얻지 못해 생존할 수 없다. 즉 이 곰팡이는 단순히 바오밥의 생존을 돕는 존재가 아니라, 바오밥 생태계의 숨은 생명줄이라고 할 수 있다. 바오밥나무와 뿌리곰팡이의 공생 관계는 자연의 복잡성과 연약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바오밥나무와 곰팡이의 공생 관계는 마다가스카르 생태계의 건강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연결 고리다. 하지만 최근 몇십년간 기후 변화와 인간 활동으로 인해 이 네트워크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예전에는 인간 활동이 가장 큰 문제였다면 지금은 기후 변화가 가장 큰 원인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마다가스카르 강수량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연간 강수량이 15~20% 감소하였다. 특히 11~3월의 우기에 집중되는 강수량이 더욱 불규칙해졌다.

인·질소 등 영양분 공급하는 균근

수분 흡수 돕고 병원균 침입 막아

최근 기후 변화 탓 공생관계 위기

인간이 농지 확장하며 토양 파괴도

나무·곰팡이 ‘네트워크’ 붕괴 땐

지역 생태계 함께 무너질 수 있어

생물다양성 지키기 위한 노력 필요

이로 인해 바오밥나무가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바오밥나무는 뿌리곰팡이의 도움으로 수분을 흡수하지만, 장기간 지속되는 가뭄은 곰팡이 생태계의 기능을 약화시켜 결국 바오밥나무도 수분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어린 바오밥 묘목이 극심한 가뭄과 토양 열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사하는 경우가 늘어나 개체군 재생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온 환경은 나무껍질 곰팡이나 벌레의 활동을 증가시켜 바오밥나무가 병충해에 시달리게 하고 고사율을 높인다.

마다가스카르의 평균 기온은 (우리나라처럼) 세계 평균 기온 상승폭보다 10% 정도 높다. 특히 건조한 지역의 온도 상승이 더욱 두드러진다. 마다가스카르 남부는 극심한 가뭄으로 기근을 겪고 있다. 과거에는 5~7년마다 발생하던 심각한 가뭄이 이제는 거의 매년 반복되고 있다. 2020년과 2021년 연속된 가뭄으로 농업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생태계와 인간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었다.

농업생산량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농지를 확장한다. 농경지를 확보하기 위해 벌목과 고의적인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때 뿌리곰팡이의 생태계와 나무가 뿌리 내릴 토양이 동시에 파괴된다. 마다가스카르와 아프리카 대륙의 늙은 바오밥나무들이 급속히 죽어가고 있다. 1400년 이상 된 나무들이 최근 몇십년 사이에 말라 죽거나 고사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바오밥나무가 아예 사라졌다.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는 단순히 한 종의 나무가 아니라 지역 생태계의 중심축이 되는 존재다. 기후 변화와 서식지 파괴로 바오밥과 공생하는 곰팡이 네트워크가 무너질 경우 이는 생태계 전체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오밥나무가 사라지면 지역은 가뭄에 더욱 취약해지고, 물 부족 문제가 심화된다.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생물은 사람이다. 지역 주민들은 비타민 C와 칼슘의 주요 공급원을 잃게 된다. 생활에 필수적인 바구니와 밧줄을 만들 수도 없다. 여우원숭이, 새와 곤충은 먹이를 잃고 박쥐와 파충류는 은신처를 잃는다. 이 생물들이 찾을 대체 자원이 그 지역에는 없다. 지역 생물다양성이 급격히 떨어진다.

바오밥나무의 생존은 뿌리곰팡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뿌리곰팡이는 바오밥나무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른 식물에게도 영양분과 수분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곰팡이 네트워크는 토양 내의 생태적 연결 고리로 작용하며, 다양한 식물들이 이 네트워크에 의존해 생존한다. 바오밥나무의 멸종은 곰팡이 네트워크의 파괴로 이어지고, 다른 식물들의 생육과 생태계 복원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설마 그깟 곰팡이 네트워크 붕괴가 뭐가 그리 대단하겠냐고? 우리는 이미 곰팡이 네크워크 붕괴가 특정 지역의 생물다양성 감소뿐만 아니라 전 지구적 생태계의 심각한 타격으로 이어진 사례를 무수히 경험했다. 곰팡이 네트워크는 식물의 뿌리와 연결되어 물과 영양분을 공급한다. 뉴질랜드의 일부 고유 난초는 특정 곰팡이가 없으면 씨앗이 발아하지 못한다. 농업 개발로 곰팡이 서식지가 파괴되자 이 난초들이 멸종위기에 처했다. 미국에서는 산성비와 농업개발로 곰팡이 생태계가 손상되면서 참나무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이로 인해 참나무 숲에 의존하던 새와 곤충들의 서식지가 줄어들고, 숲 전체의 생태계가 쇠퇴했다.

곰팡이는 유기물을 분해해 토양을 비옥하게 하고 영양분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형태로 변환시킨다. 아마존의 뿌리곰팡이는 나무와 공생하면서 탄소를 저장하고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한다. 숲을 벌채하고 토지를 농지로 전환하면서 곰팡이 네크워크가 손상되자 토양의 비옥도가 급격히 낮아져서 다른 식물의 생육도 영향을 받았다. 곰팡이 네트워크가 붕괴하자 더 이상 숲이 재생되지 못할 정도로 토양 침식이 가속화되었다. 아마존의 곰팡이 네트워크가 손상되자 토양의 비옥도가 급격히 낮아지고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이 증가하여 기후 변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곰팡이 네크워크는 병원균으로부터 식물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곰팡이 네트워크가 손상되자 카우리나무가 뿌리썩음병에 감염되어 뉴질랜드 고유 숲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다.

곰팡이 네트워크는 숲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주춧돌이다. 이 시스템의 붕괴는 단순히 특정 종의 멸종만이 아니라, 생물다양성, 토양 건강, 탄소 순환, 물 순환 등 전 지구적인 환경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뉴질랜드와 아마존에서 관찰된 사례들은 이러한 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님을 경고하고 있다. 곰팡이 네트워크의 보호와 복원을 위한 전 지구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

어린 왕자가 살던 소행성 B612에서는 거대한 바오밥나무가 재앙일 것 같다. 이해한다. 하지만 아프리카 대륙과 마다가스카르의 바오밥나무는 다르다. 여기에서는 생명의 근원이다. 거대한 바오밥나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곰팡이에게 의존하여 생존한다. 기후위기 시대다. 우리 인간은 소행성 B612의 바오밥나무 같은 존재보다는 지구 생태계에서 뿌리곰팡이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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