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절 속 색채의 변화
사람은 태어나서 색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색에 반응하고, 이러한 색은 우리의 감정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어떤 색은 좋아하고 어떤 색은 싫어하거나 혹은 무감각한 반응은 개인의 경험과 문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색의 변화에 따른 감정의 흐름은 자연의 사계절에서 뚜렷하게 알 수 있다.
봄,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연둣빛으로 물든다. 이른 새벽 강가의 오솔길을 걸으면 파릇파릇한 새싹과 풀잎에서 생명력을 느낄 수 있으며, 개나리의 선명한 노란빛과 진달래의 여린 분홍빛은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과 따스함을 안겨준다. 벚꽃의 연분홍빛의 화사함은 그야말로 봄의 절정으로 모두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하다.
여름, 세상은 짙은 초록과 원색의 꽃들이 만발하고 강렬한 태양은 에너지를 뿜어 내고 새파란 하늘과 드넓은 바다는 시원한 활기를 느낄 수 있다. 여름은 성장을 향한 성실함과 책임감으로 심신이 지치고 때로는 고독감이 밀려오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회복을 위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계절이다.
가을, 변화와 성숙의 계절이다. 짙푸르던 나뭇잎들은 저마다 붉은색, 노란색, 주황색 등 따뜻하고 포근한 풍요로운 색으로 갈아입으며 자연을 채우는 시기이다. 봄부터 여름까지 화려한 색채에 흠뻑 젖어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서늘한 바람과 함께 갈색의 계절로 들어선다. 들떴던 마음은 가라앉고 안정과 사색에 잠기거나 때로는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겨울, 겨울 하면 가장 먼저 눈이다.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은 고요하고 회색빛 하늘이 은근히 분위기를 자아낸다. 긴 겨울밤의 짙은 남색은 안정감과 신비로움을 주지만, 때로는 고독하고 외로움으로 몸서리치게 한다.
계절이 바뀌면서 자연의 색이 달라지듯, 우리의 삶도 생애 주기에 따라 좋아하는 색이 달라진다. 우리는 이 변화를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살아가지만, 어린 시절 좋아했던 색과 지금 마음이 가는 색을 비교해 보면 그 변화를 쉽게 알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면이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처럼, 색에 대한 생각의 변화가 함께하고 있다.
우리의 색채 앨범
계절이 자연의 색을 바꾸어 놓듯이, 우리의 삶도 나이와 경험에 따라 자연스럽게 색을 바꾸어 간다. 삶의 여정에 따라 색의 기록들이 자신의 컬러 히스토리(색채 앨범)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색채 앨범에는 어떤 색들이 담겨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어린 시절, 나는 친구들과 함께 살구 받기 놀이를 하며 이야기를 지어내어 들려주고, 수줍고 나서지 않는 조용한 성격으로 연분홍색과 연두색을 닮은 소녀였다. 어린 시절 늘 따뜻한 품으로 끌어 주시던 어머니에 대한 색은 주황색이다. 어머니의 주황색은 사랑과 안정을 주는 온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초록색의 큰 산과 같은 느낌이다. 늘 내 앞을 든든히 지켜 주시고, 나를 믿고 지지해 주셨던 수호신 같은 분이었다. 그 넓고 푸른 산 아래서 나는 언제나 안전하고 평화로웠다.
이처럼 나의 어린 시절 색채 앨범은 수줍은 분홍과 연두, 따뜻한 주황, 그리고 든든하고 안정된 초록으로 가득하다. 이 색채는 단순한 색을 넘어, 나의 어린 시절의 감정과 기억, 그리고 나를 둘러싼 소중한 존재들에 대한 기억이다. 이런 기억들은 여전히 나의 마음속 깊이 선명하게 남아,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만의 색채 앨범을 만들어 보자. 그냥 종이 한 장과 연필 또는 색연필을 준비하여 어린 시절, 10대, 20대 등 현재까지, 각 시기에 겪었던 중요한 사건, 그때의 감정, 자신을 둘러쌌던 상황들을 생각하며 “아, 그때의 나는 이런 색이었어”라고 느껴지는 색을 표현해 본다. 예를 들면 순수했던 어린 시절은 연분홍색, 꿈과 미래에 대한 희망의 10대는 초록색으로, 열정과 고민이 많던 20대는 남색으로 채워질 수 있다. 50대를 지나 60대에 이르러 색채 앨범은 또 다른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잔잔하면서도 풍요로운 색감으로, 또는 짙은 회색이나 갈색, 짙은 남색 등으로 채워질 수 있다. 지나온 세월의 흔적은 깊고 편안한 톤의 색들로 표현되거나, 때로는 거칠고 투박한 어두운색으로 그려질 수 있다. 삶의 여정 속에서 얻은 자신의 감정을 색으로 담아내며 세월의 흔적을 시각화할 수 있다. 이 의미 있는 시간을 통해 좋았던 시기와 힘들었던 시기에 자신을 어떤 색으로 표현했는지, 그리고 각 시기의 감정이나 상황, 배경에 따라 자신의 색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서툰 색칠부터 삶의 깊이가 묻어나는 색의 표현까지, 각자의 색채 앨범은 삶의 희로애락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특별한 기록이다. 그 시절의 감정과 기억, 그리고 성장의 흔적이 색깔로 새겨지고, 시간이 흘러 앨범의 종이가 바래고 색깔이 희미해질지라도, 그 안에는 나의 삶의 이야기가 영원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색채 앨범은 삶의 모든 순간을 감싸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조화자 이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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