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지않아 바람이 불어오고/ 머지않아 죽음이 다가와 수확하리라./ 머지않아 회색 유령이 와서 웃으면/ 우리 심장은 얼어붙고/ 정원도 그 화사함을,/ 생명도 그 빛을 잃으리라.// 함께 노래하며 즐거워하자./ 머지않아 우리는 먼지가 되리니.
-헤르만 헤세 ‘가을’.
한여름의 문턱에서 『머지않아 우리는 먼지가 되리니』를 꺼내 읽는다. 아무래도 제목 때문이다. 잠언에도 나온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번역가 홍성광씨가 헤세(사진)의 문학과 삶을 사계절 구성으로 풀어쓴 에세이집이다. 내친김에 계절별로 헤세의 시를 찾아본다.

“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아이들은 안다./ 살아라, 자라라, 꽃피워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고 새싹을 틔워라./ 몸을 내맡기고 삶을 두려
워하지 말라!// 봄이 무슨 말을 하는지 노인들은 안다./ 노인이여, 땅에 묻히거라,/ 씩씩한 소년에게 그대의 자리를 비워줘라./ 몸을 내맡기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시 ‘봄의 목소리’다.
여름 시의 제목은 ‘시든 잎’이다. “꽃은 모두 열매가 되려 하고/ 아침은 모두 저녁이 되려 한다./ 이 지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변전과 세월의 흐름만 있을 뿐./ 더없이 아름다운 여름도/ 언젠가는 가을과 조락을 느끼려 한다./ 잎이여, 끈기 있게 조용히 참으렴,/ 불어오는 바람이 낚아채려 할 때.” 찬란한 봄과 여름에서도 그는 죽음을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11월’. “만물은 이제 몸을 가리고 퇴색하려 한다./ 안개 낀 날들이 불안과 근심을 품고 있다./ 폭풍의 밤이 지나 아침이 오면 얼음의 소리가 들린다./ 세계는 이별을 슬퍼하고 죽음으로 가득 차 있다.// 그대 역시 죽는 것과 몸을 맡기는 것을 배우라. / 죽음을 아는 것은 성스러운 지혜이니./ 죽음을 준비하라-그러면 죽음에 끌려가도/ 그대는 더 높은 삶으로 들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