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묻다] 왜 어떤 사람은 아파도 쉬지 못할까?

2025-10-30

며칠 새 기온이 뚝 떨어졌다. 거리에는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늘어나는 만큼, 독감과 코로나19 예방접종을 권장하는 지자체의 분주한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다. 추위가 몰려오는 환절기에는 자연스럽게 아픈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특히 주거복지 현장에서 접하는, 불안정한 형태의 노동에 종사하는 분들의 상황이 더욱 우려된다. 건설·봉제·요식업 등 분야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하루라도 일을 쉬면 그만큼의 일당을 잃기 때문에, 몸이 아파도 일터를 떠날 수 없는 현실을 견디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규모 있는 기업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아플 경우 유급 병가를 통해 회복의 시간을 보장받지만, 불안정한 일자리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너무도 먼 이야기다.

“아프면 쉬어야 한다.” 코로나19 시기, 모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사회가 내건 구호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말은 현실에서 실현되기 어려운 권고에 불과했다. 일을 쉬는 순간 곧바로 생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결국 무리해서 일을 이어가다 병이 악화되고, 다시 일하지 못하며 빈곤으로 내몰리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2022년, 한국 사회는 ‘아플 때 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상병수당’을 시범적으로 도입하였다. 상병수당은 질병이나 부상으로 일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일정한 소득을 보전해주는 사회보장제도다.

이 제도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다. OECD 38개국 중 한국과 미국 일부 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운영 중이며, 국제사회보장협회 회원국의 90% 이상이 상병수당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2022년 7월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2025년 전면 도입을 목표로 했지만, 최근 정부는 제도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도입 시점을 2027년 하반기로 연기했다. ‘아플 때 쉴 권리’가 세계의 보편적 제도로 자리 잡은 지금, 우리는 여전히 시범사업의 문턱을 넘어가지 못한 채 머물러 있다. 3년 가까이 시범사업을 이어왔음에도 제도화가 지연된 현실은 매우 아쉽다.

더욱이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상병수당 시범사업의 낮은 예산 집행률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만 사업이 시행되다 보니 제도 인지도가 낮았고, 참여 의료기관도 제한적이어서 국민이 제도를 실제로 이용하기 어려웠다는 점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게다가 65세 이상 고령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는 상병수당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누구나 아플 수 있음에도, 제도 안에서 ‘누구나’가 충분히 보호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상병수당의 전면 도입이 늦춰진 것은 분명 아쉽지만, 그만큼 제도를 더 세심하게 다듬을 시간이기도 하다. 상병수당은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원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왜 어떤 사람은 아파도 쉬지 못할까?”라는 질문에 “누구나 아프면 충분히 회복할 때까지 쉴 수 있다”고 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질병이 생계의 위기가 아닌, 회복과 재생산의 시간으로 기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인 ‘기본적 삶을 위한 안전망 강화’에 상병수당이 포함된 만큼 상병수당이 하루빨리 안정적이고 포괄적인 제도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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