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5월20일은 ‘세계인의 날’이었다. 이날은 다양한 민족적 배경과 문화적 전통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제정된 국가기념일이다. 세계인의 날을 맞아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의 모습을 다시금 떠올려 보게 된다.
19세기 말, 당시로는 누구보다 먼저 일본과 미국으로의 유학 경험을 가질 수 있었던 유길준은 1895년 서유견문을 출간했다. 이 책은 근대 서구 사회의 정치, 교육, 과학기술 등 다양한 측면을 두루 소개한 책으로 한국 근대 지성사의 중요한 텍스트로 평가받고 있다. 유길준은 당시의 어려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조선인으로서의 자아와 세계인으로서의 자아를 어떻게 조화시키려고 했을까?

서유견문에는 당시 서구 학자들이 인류를 피부색에 따라 백색인, 흑색인, 황색인, 적색인, 회색인 등으로 분류하려 했던 시도도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러한 구분은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지나치게 단순하고 일차원적이지만, 유길준은 이를 통해 세계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과거 한때 서구 사회는 피부색을 기준으로 인간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세계관을 구축했고, 이는 차별과 불평등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사실 모든 사람은 제각각의 피부색을 지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유색인이다. 그럼에도 유색인종의 사전적 정의는 백인종을 제외한 모든 인종을 가리킨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의 기원은 식민주의가 세계를 재편하던 제국주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의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피부를 ‘무색’으로 인식하며, 다른 인종의 피부에 ‘색이 있다’고 명명함으로써 인종적 위계질서를 만들어냈다. 안타깝게도 피부색을 기준으로 한 사회적 배제와 차별은 오늘날에도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서유견문이 세상에 나온 지 130년이나 된 지금, 우리에게 세계인의 날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인종주의적 편견과 차별로부터 우리 사회는 자유로운가? 한국 사회는 인종적·민족적 다양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확대되는 흐름을 경험하고 있다. 이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고, 더 많은 이들이 한국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걸맞은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추는 것은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세계인의 날을 맞아 우리는 다시 한 번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일원이자 세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다양성을 포용하는 열린 자세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가? 세계인의 날이 단지 상징적인 기념일에 그치지 않도록, 다문화적 공존을 위한 여러 정책과 제도가 일상 속에서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양경은 성공회대 사회융합학부 사회복지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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