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기의 말에게 말 걸기] ‘기쁘다’와 ‘즐겁다’

2025-05-28

‘기쁘다’와 ‘즐겁다’, 이 두 말은 비슷해 보인다. 그 말이 그 말 같다. 무언가를 흐뭇하고 좋게 느끼는 마음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찾아보아도 이 두 말은 그 의미를 상당 부분 공유한다. ‘기쁘다’는 ‘욕구가 충족되어 마음이 흐뭇하고 흡족하다.’이고, ‘즐겁다’는 ‘마음에 거슬림이 없이 흐뭇하고 기쁘다.’로 풀이하고 있다. ‘즐겁다’ 안에 ‘기쁘다’가 있는 것 같고, ‘기쁘다’ 안에 ‘즐겁다’가 있는 것 같다. 사전은 ‘기쁘다’의 용례로 “시험에 합격하여 정말 기쁘다.”를 들고 있고, ‘즐겁다’의 용례로 “놀이를 하며 즐겁게 지냈다.” 등등을 들고 있다. 구체적 용례를 보아도 이 두 말의 의미를 얼른 구분해 내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 말이란 비슷할 수는 있지만, 그야말로 똑 같은 뜻의 말이 두 개 있을 수는 없다. 무언가 미세하게라도 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말로 나타나는 것이다. 설령, 사전적 의미가 유사하더라도 두 말이 쓰이는 맥락이 미묘한 차이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다가 사전에 등재된 말의 뜻이라도 언제나 고정불변의 절대적 의미로 고착되지 않는다. 이 분야를 다루는 의미론(semantics)에서는 어떤 말이든 그 말을 사용하는 언중(言衆)들의 사회문화적 환경이나 사회심리적 생태가 변화하면 말의 뜻도 조금씩 달라짐을 밝힌다.

지난 한 세대 동안 ‘즐겁다’는 말은 의미의 변이(變異)가 있어왔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이는 즐거움을 경험하는 한국인의 사회적, 문화적, 심리적 생태가 변화한 데서 온 것이다. 즉 현대인이 즐거움을 추구하고 누리고 평가하는 양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한 변화의 배경에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놀이, 게임, 쇼츠 영상 등이 스마트폰이라는 기기를 통해서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즐거움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환경이 있다.

우리 일상 주변에 디지털로 콘텐츠화 된 즐거움은 항시 장전되어 있고, 원하면 언제나 그 즐거움을 발사하듯 소비할 수 있는 생태에서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도파민(Dopamine)’이란 말이 이런 즐거움 현상을 잘 표상한다. 도파민은 기대한 즐거움이 충족될 때 뇌에서 나오는 물질이다. 이런 즐거움의 소스가 일상화 되면서 잠시라도 즐거움이 지연되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특히 어린이 청소년)이 많아졌다. 도파민 분비가 중단되면 모종의 불안으로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정도가 심하면 도파민 중독이 된다. ‘즐겁다’는 현상에 이런 도파민의 기제가 끼어드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기쁘다’는 ‘즐겁다’와 의미론적으로 조금씩 변별되어 가는 듯하다. “쇼츠 게임을 하면 나는 즐겁다.”라는 말은 자연스럽지만 “쇼츠 게임을 하면 나는 기쁘다.”라는 말은 부자연스럽다. “도파민이 즐거움을 준다.”라는 말은 성립하지만, “도파민이 기쁨을 준다.”라는 말은 어딘가 이상하다. ‘즐겁다’가 몸 중심의 감각적 욕망을 즉흥적으로 해소하는 데서 오는 심리적 만족을 대변하는 말이라면, ‘기쁘다’는 어떤 정신이나 가치 등을 마음에 품고 노력한 데에 대한 어떤 심리적 만족이나 내적 감흥을 나타낼 때 쓰는 말로 옮겨져 가고 있는 듯하다.

즐겁기는 해도 그것이 진정 ‘기쁘다’의 상태로 이어지지 않는 심리 생태를 우리는 경험한다. 기쁘기는 해도 그것을 마냥 즐겁다고 말하지 않는 경우도 늘어난다. 진정한 기쁨의 소중함을 그 자리에서 다 소비하지 않고, 오래 지키고 내면화하려면 그렇게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전적인 의미의 ‘즐겁다’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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