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홉 살 소년 단지의 하루는 손을 깨끗이 씻고 코를 파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타가 아니다. 코를 파는 게 이토록 경건할 일인가 싶지만, 내막을 알고 나면 금세 이해하게 된다.
단지는 대대로 반짝반짝 빛을 내는 야광 코딱지를 지닌 집안에서 태어났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갈 법한 특별한 능력이지만, 이는 비밀로 유지해야 한다. 일본 드라마 <핫스팟>의 초능력을 가진 외계인이나, 영화 <어바웃 타임>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자들에 비하면 하찮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능력을 정의로운 일에 쓴다는 점에서만은 우리 주인공 단지가 그들에게 밀릴 것이 없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매일 같이 야광 코딱지를 ‘발굴’해 모아두는 단지에게 어느 날 그 능력을 발휘할 사건이 발생한다. 마치 재채기를 참을 수 없듯이, 강아지를 잃어버린 할머니의 전단지를 발견한 단지는 자신의 능력을 쓸 기회임을 감지한다. 오밤중에도 환히 발광하는 단지의 야광 코딱지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했을까. 코딱지 히어로의 활약상을 보노라면 마음이 간질간질 따뜻해진다.

<야광 코딱지>는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태수는 도련님> <그럴수록 산책> 등으로 잘 알려진 도대체 작가의 첫 어린이 책이다. 세상의 번잡한 속도감에 개의치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은 에세이와 그림으로 많은 ‘어른’들을 위로해 온 작가의 무해한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야광 코딱지’라는 아이디어는 도대체 작가의 학창 시절 “내 코딱지는 초록색”이라고 자랑하던 친구에게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렇게 수십 년 묵은 이야기는 심보영 작가의 그림과 만나 사랑스러운 동네 히어로의 세계관을 낳았다.
한달음에 완독한 후 두 번째 독서에 나선 우리 집 어린이는 야광 코딱지가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같이 빛을 발하는 장면을 최고로 꼽았다. 이 책을 권하면서 ‘코딱지’에만 집중하면 어쩌나 했는데, 도리어 어린이는 부제인 ‘정의로운 일’에 더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김소영 작가님 말처럼 어린이야말로 정의를 사랑한다.
참고로 도대체 작가에 따르면 조만간 2권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