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의 조용한 도시 마라넬로. 세계적인 수퍼카 브랜드 페라리(Ferrari) 본사의 E-빌딩에 모인 관람객들은 숨죽여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명이 비추고 정적 속에 붉은 천이 서서히 걷히자 마침내 은색 섀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레트리카(Elettrica)’라 불리는 페라리 역사상 최초의 순수 전기차 플랫폼이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화려한 배기음도, 엔진의 굉음도 없었다. 내연기관 엔진 대신 전기 배터리로 무장한 기존과는 좀 다른 페라리다. 1130마력.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도달까지 단 2.5초. 최고 속도는 310km/h 이상. 배터리는 한국의 SK온이 공급하며, 페라리는 이를 직접 조립한다. 용량은 122kWh. 주행 가능 거리 530km. 스포츠카 본연의 성능을 발휘하면서도 새로운 기술을 접목하려는 페라리의 도전이다.
1. 변하는 세상… 수퍼카의 고민
수퍼카는 전동화의 거대한 흐름을 애써 외면해 왔다. 그들에게 전기차란 ‘감성을 잃은 차’의 대명사였다. 요란한 배기음, 강렬한 진동, 고회전 엔진의 폭발력 같은 것이야말로 수퍼카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퍼카의 감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대 변화에 온몸으로 저항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은 커져만 갔다.
우선 규제의 벽이 그들을 가로막았다. 유럽연합(EU)의 탄소 배출 규제는 신차의 CO₂규제를 공식화했다. 한 브랜드가 한 해 동안 유럽에서 판매한 모든 신차의 평균 CO₂배출량을 계산해 기준을 초과하면 벌금을 내야 한다. 이게 수퍼카에는 특히 치명적이었다. 예컨대 람보르기니처럼 마력 800 이상, 무게 2톤(t) 이상인 차량은 당연히 탄소 배출량이 높다. 생산량은 연 1만 대 미만. 소수 생산 체제에서는 몇 대만 과다 배출해도 전체 평균이 무너진다. 몇 억원짜리 차를 한 대 팔고도, 그 차에서만 수백만~수천만 원의 벌금이 따라붙는 구조다. 여기에 배출가스 제로를 요구하는 도시, 내연기관 판매를 금지하려는 국가들이 늘어난 것도 수퍼카의 변심을 부추겼다.

전기차 시장이 캐즘(일시적 수요정체)을 겪으면서도 결국에는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도 수퍼카 브랜드에는 시장 참여 압박으로 작용했다. 시장조사업체 프리시던스 리서치는 글로벌 고급 전기자동차 시장 규모가 올해 2632억5000만 달러(약 376조원)에서 2034년 1조1694억 달러(약 1670조8400억원) 규모로 커질 거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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