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표가 모자라서 메이저리그(MLB)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만장일치를 놓쳤지만, 스즈키 이치로는 마음에 두지 않았다. 오히려 만장일치가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했다.
이치로는 22일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가 2025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를 발표한 뒤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돌이켜보면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힘든 일도 많았다. 한 걸음씩 전진해 오늘을 맞이한 것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격스럽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치로는 “2001년 처음 MLB에 왔을 때는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MLB에서 뛸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며 “일본인 최초로 헌액된 것을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감격스러워 했다.
1992년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블루웨이브(현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데뷔한 이치로는 9시즌 통산 1278안타에 통산 타율 0.353을 기록하며 일본 무대를 평정하고 MLB로 떠났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 유니폼을 입고 MLB에 데뷔한 그는 데뷔 첫 해 타율 0.350, 242안타, 56도루로 3개 부문 1위를 차지하고 아메리칸리그(AL) 신인상과 최우수선수(MVP)를 거머쥐었다. MLB 역사상 신인상과 MVP를 한 시즌에 동시 석권한 것은 1975년 프레드 린(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에 이어 두 번째였는데, ‘데뷔 첫 해’ 달성한 것은 이치로가 최초였다.
이후 이치로는 수많은 역사를 써내려갔다. 2010년까지 10년 연속 200안타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고, 뛰어난 수비력을 바탕으로 10년 연속 외야수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했다. 여기에 2004년에는 262개의 안타를 쳐 조지 시슬러가 1920년에 세운 MLB 단일시즌 최다 안타 기록(257개)을 84년 만에 경신했다. 당시 이치로의 타율은 0.372로, 이치로 이후 MLB에서는 더이상 타율 0.370 이상을 기록한 타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시애틀과 뉴욕 양키스, 마이애미 말린스를 거친 이치로는 MLB 19시즌 동안 통산 타율 0.311, 3089안타, 509도루를 기록했다. 은퇴 이후 5시즌이 지나 이번에 MLB 명예의 전당 입후보 자격을 얻은 이치로는 첫 투표에서 입성에 성공했다.
입성을 위한 기준인 득표율 75%를 훌쩍 넘은 것은 물론이고, 전체 394표 가운데 393표를 얻어 득표율 99.75%를 기록했다. 이치로의 득표율은 2019년 명예의 전당에 ‘만장일치’로 오른 마리아노 리베라, 그리고 2020년 헌액된 데릭 지터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이치로와 지터는 반올림 했을 경우 99.75%로 같지만, 소수점 셋째 자리까지 계산했을 경우 지터가 99.748%, 이치로가 99.746%로 근소하게 지터가 앞선다.
하지만 이치로는 만장일치가 무산된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했다. 그는 “1표가 부족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완벽을 추구하며 나아가는게 바로 인생이다. (만장일치가 무산돼) 불완전하니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래서 불완전한 것이 좋다”고 했다. 이어 자신처럼 1표가 부족해 만장일치 입성에 실패한 지터를 언급하며 “지터는 정말 독특한 매력이 있는 선수였다. (만장일치에 1표가 부족한 것이) 지터와 함께라서 좋다”며 웃었다.
이치로가 선수 생활의 전성기를 보냈던 시애틀은 명예의 전당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시애틀의 영구 결번은 이치로의 51번과 역대 최고 지명타자로 꼽히는 에드가 마르티네스의 11번, 켄 그리피 주니어의 42번, 그리고 MLB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을 기리기 위해 전 구단 영구 결번으로 지정된 42번까지 4개다.
이치로의 대선배인 그리피 주니어는 이치로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되자 MLB 네트워크와 인터뷰를 통해 “나도, 내 아내도 기쁘다. 다음에 만나면 술을 가져와라. (명예의 전당) 루키가 되면 해야하는 일”이라는 농담과 함께 축하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