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가 역대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가운데, 업체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저가 인디 브랜드는 훨훨 날고 있지만, 중·고가 브랜드는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1분기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6억 달러(약 3조726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 증가했다. 지난해(102억 달러)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이후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일본·중국을 중심으로 K뷰티 인기가 뜨거워지고 있지만, 중·고가 브랜드는 고전하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이 2021년 출시한 초고가 브랜드인 ‘뽀아레’는 파운데이션(13만원) 등 일부 품목 생산 중단에 나섰다. 전체적인 제품군 리뉴얼도 진행 중이다. 원가 부담이 큰 고급 원재료를 사용했지만, 판매량이 신통찮아서다. 익명을 원한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판매량이 많으면 원가가 높아도 감내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손해만 보고 있어 생산을 중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호텔신라가 2022년 로레알과 함께 합작법(로시안)을 설립해 출시한 초고가 화장품인 ‘시효’도 지난 1월 법인 청산 절차에 돌입했다. 중국 등 아시아 고소득층을 노리고 만들었지만, 적자를 벗어나지 못해서다. 한섬이 2021년 출시한 ‘오에라’도 크림 가격이 최대 120만원 선인 고가 화장품이지만, 연 매출이 10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국내 대표 화장품 대기업들도 맥을 못 추는 상황이다. 애경산업은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60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63% 감소했다. LG생활건강도 1분기 영업이익이 1424억원으로, 같은 기간 5.7% 줄었다.

K뷰티 인기는 인디 브랜드가 선도하고 있다. 2019년 1만 5707개였던 화장품 브랜드(화장품책임판매업체)는 지난해 2만 7932개로 크게 늘었다. 이경수 코스맥스 회장은 지난달 한 뷰티 행사에서 “전 세계 뷰티 시장을 이끄는 원동력이 인디 브랜드의 성장"이라며 "코스맥스만 해도 연 매출 1000억원 이상 인디 브랜드 24곳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디 브랜드의 성장을 이끈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인 한국의 위탁개발생산(ODM) 시스템이다. 한국콜마, 코스맥스 같은 ODM업체는 자체 개발한 수분 강화·주름 개선 제품에 케이스·브랜드만 붙여서 판매할 수 있는 완제품을 갖추고 있다. 주문 물량에 따라서 차이가 있지만, 4000만원에 아이디어만 있으면 ‘1인 뷰티 기업’ 창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다. 구자현 이베이재팬 대표는 “만족할만한 품질, 합리적 가격, 매력적인 디자인, 재밌는 마케팅이 어우러져 K뷰티가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특별한 기술 없이 쉽게 창업할 수 있다 보니 폐업도 잦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8831개 화장품 브랜드가 사라졌다. 식약처 관계자는 "지난해 폐업 업체수가 많은 이유는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폐업 업체를 일괄 반영했기 때문"이라며 "폐업도 잦지만 창업이 더 많다. 전체적으로 순증 추이가 맞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도 향후 변수다. K뷰티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무관세 혜택을 받아 ‘고품질 낮은 가격’을 앞세웠다. 그런데 이달 초부터 기본 관세(10%)가 붙기 시작했고 향후 상호관세(25%)까지 더해질 수 있다. 대한화장품협회 관계자는 "상호관세까지 현실화하면 업계 전반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중소·중견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경쟁력이 약화할 수 있다"라고 했다.

미국이 중국에 높은 관세(54%)를 부과하기로 한 것과 관련, 오히려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화장품 제조사들 보다 가격 인상폭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권우정 교보증권 책임연구원은 “K뷰티 제품의 평균 판매 단가(ASP)가 20달러 수준이다. 3달러 수준 가격 인상(15%)으로 수익성 저하를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