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위 깃털은 어떻게 뽑는 게 좋을까

2025-03-20

‘바람직한 조세 원칙은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가능한 한 많은 깃털을 뽑는 것.’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인 콜베르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 때 경제수석이 세제 개편안을 설명하면서 인용했다가 대차게 비판받으면서 유명해진 말이기도 하다.

꽥꽥거리며 몸부림치는 거위의 생깃털 뽑는 장면이 연상되는 탓에 언짢게 들리지만, 전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는 알겠고, 거기에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측면이 있다. 요컨대 세금은 국민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 그러니 가급적 국민이 부담을 덜 느끼는 쪽으로, 그리고 너무 요란하지 않게 걷는 게 좋다는 뜻이겠다.

오래된 얘기를 새삼 꺼내는 까닭은 소득세 개편 논란 때문이다. 최근 논의되는 소득세 개편안의 핵심은 물가 수준을 반영해 과표구간과 공제액을 높인다는 것이다. 현행 세율은 1400만원까지 6%, 5000만원까지 15%, 8800만원까지 24%, 1억5000만원까지 35%처럼 소득이 많으면 세율도 높아지는 누진체계다. 부자는 가난뱅이보다 담세력이 클 것이므로 누진세율 자체는 정당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 성장과 물가 상승으로 인해 소득은 높아진다. 경제 성장 덕에 소득이 늘어나면 그만큼 부유해져서 담세 능력도 커진 셈이므로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도 별문제가 안 된다. 그런데 순전히 인플레 탓에 소득이 높아진 것이면, 내 경제력과 담세 능력은 그대로인데 세율만 높아지니 부당하다는 느낌이 든다. 실질소득이 그대로면 적용되는 세율도 그대로여야 맞다고 여겨진다. 당연히 할 법한 생각이고, 실제로 타당하다. 그래서 누진 소득세율 체계를 갖춘 국가들은 물가 상승에 따라 과표구간을 조정한다. 아예 과세표준이 물가에 연동돼 자동으로 바뀌는 국가도 있고, 부정기적으로 과표구간을 조정하는 나라도 있다. 우리는 후자에 속한다. 예를 들어 2022년까지 6%와 15% 세율이 적용되는 과표구간은 각각 1200만원과 4600만원이었는데, 2023년부터 1400만원과 5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좋은 소득세, 갖춰야 할 기준 다양

비록 과표구간을 조정해왔다고는 해도, 인플레를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 결과 소득세 수입은 빠르게 늘어서 지난 10년간 두 배가 됐다. 같은 기간 소득 증가보다 훨씬 빠른 속도다. 물론 소득세 증가에는 다른 요인도 영향을 미쳤지만, 과표구간이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중요한 요인인 것은 맞다. 그래서 ‘월급쟁이만 봉이냐’는 볼멘소리가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여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당에서도 소득세 과표구간을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누진적인 소득세 체계에서는 물가 수준을 반영해 과세표준을 조정하는 게 누진세의 취지에 걸맞고 형평성 차원에서도 합당하다. 그렇기는 한데 나는 물가 상승에 맞춰 과세표준을 높이는 것에 썩 찬성하지는 않는다.

경제학 이론 중에 ‘차선(次善)의 이론’이라는 게 있다. 어떤 대안이 최적이 되려면 4개의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최적 대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능한 대안은 3개의 조건을 충족한 것부터 2개, 1개, 0개의 조건만 충족한 것까지 넷뿐이다. 얼핏 생각하면 그래도 3개 조건을 충족한 것이 차선책일 듯싶다.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어차피 모든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더 많은 조건을 충족한 게 더 나은 대안은 아니라는 얘기다. 경우에 따라서는 1개만 충족한 것, 혹은 하나도 충족하지 못한 게 더 나은 대안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소득세도 마찬가지다. 물가와 세율의 관계만 놓고 본다면 물가에 연동해 과세표준을 조정하는 게 맞다. 그런데 좋은 소득세가 갖춰야 할 기준은 다양하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기준들도 충족하지 못한 게 많고 그래서 상당히 왜곡돼 있다. 우리 소득세가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는 다른 국가들과 비교하면 분명하다.

대다수 근로자들은 늘어서 ‘불만’

우리의 소득세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하위권에 속한다. 반면에 소득세 최고세율(지방세 포함 49.1%)은 꽤 높아서 5위권에 든다. 최고세율이 높은데 세수 규모가 작은 이유는 단순하다.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과세표준이 너무 높아서 극소수만 해당하고, 대다수에게 적용되는 세율은 낮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각종 공제가 많아서 대다수의 실효세율은 명목세율보다 훨씬 낮다. 2022년 기준으로 중하위에서 중상위(평균소득의 3분의 2부터 평균소득보다 3분의 2 높은 소득) 소득 구간의 실효 소득세율을 보면 우리는 3%부터 12%까지다. 이에 비해 OECD 평균은 10%에서 21%까지다. 우리는 대다수의 실효세율이 매우 낮을 뿐만 아니라, 면세자 비율도 높다. 2023년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전체 근로소득자의 3분의 1 정도인데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축에 든다.

좋은 소득세가 갖춰야 할 기준으로는 담세력에 상응하는 세 부담, 넓은 과세 기반, 충분한 재원 확보 등을 꼽을 수 있다. 우리는 셋 모두 다른 국가들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 그나마 그동안 명목소득이 늘어도 과세표준은 크게 변하지 않은 탓에 많이 좋아진 것이다. 면세자 비율은 10년 전인 2015년만 해도 거의 절반에 가까웠으나, 꾸준히 줄어서 3분의 1 수준이 됐다. 대다수 근로자는 과거보다 소득세가 상당히 늘어서 불만이겠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매우 적은 편이다(우리의 평균 실효 소득세율은 5% 남짓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지난 15년간 내리 적자재정을 운용했으며, 세수 확보가 절실하다.

2주 전에 민주당 국회의원 20여명이 공동으로 ‘감춰진 증세, 월급보다 더 오른 물가로 인한 세 부담 증가! 완화 방안은?’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못하는 과세표준은 감춰진 증세가 맞다. 하지만 그 덕에 우리 소득세의 왜곡이 어느 정도 완화되기도 했다. 이런 은밀한 증세를 없애고 소득세의 왜곡을 고치려면 중상위 이하의 소득세율을 전반적으로 높이고 각종 공제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그럴 자신이 있다면 나 역시 과세표준 물가 연동에 찬성한다. 그런데 아무래도 꽥꽥대며 시끄러운 것보다는 조용한 편이 좀 더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자꾸 드니 어찌할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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