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각자의 날씨가 만나 계절이 되었다

2025-05-15

예측불가의 달갑잖은 번개조차

인간의 생명 유지엔 필수 조건

고비마다 만나는 사건들 통해

날씨처럼 변하는 삶을 말하다

“너 공기 중에 산소보다 질소가 더 많은 거 알지? 많아도 몇 배나 많아. 숨 쉬는 거 때문에 인간은 산소 중한 줄만 알지. 근데 공기 중에 왜 질소가 80퍼센트나 있겠냐? 산소가 없으면 기껏 숨 못 쉬는 게 문제지만, 질소가 없으면 아예 생명체가 존재도 못해…” 이어 ‘질소고정’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유기체는 질소 섭취가 필수지만 동물도 호흡으로 질소를 흡수하지 못하고 식물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자연 현상이 필요한데, 번개다. 번개는 대기 중의 산소와 질소를 질소산화물로 변환하도록 도와 인간의 흡수가 가능하게 만든다.

이신조의 소설집 <너의 계절, 나의 날씨>에 담긴 첫 단편 ‘봄밤의 번개와 질소’는 전남편의 제사를 지내겠다는 아내를 마주한 한 남성의 이야기다. 불의의 사고로 생을 마감한 남편을 기리는 제사를 후남편과 함께하겠다는 아내를 보고 남자는 생각보다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전남편의 죽음 이후 아내가 자신을 만나고 함께 지내온 4년의 생활을 돌이키며 생각한다. 우울증과 알코올의존증, 공황장애에 빠져있던 자신이 이 시간들을 통해 달라져있다는 사실을.

소설은 남자가 아내와 함께한 “얼마든지 없을 수도 있었던 이 모든, 꿈같은 실체들”처럼, 우리가 인생의 고비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이 질소고정을 통해 존재에 숨을 불어넣는 봄밤의 번개처럼 예측할 수 없는 것들에서 비롯한다고 얘기한다. 인생은 어떤 사건을 매개로 해 순간에 달라지기도 하지만, 날씨와 계절처럼 시간을 두고 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울에 잠식되는 것은 하늘이 서서히 구름에 덮이는 일과 비슷”하고 “구름처럼 삶”도 “가눌 수 없다”.

그래서일까 이번 소설집에서 날씨와 계절은 배경이 아니라 그 자체로 주인공에 가깝다. 등장인물들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세계의 일부라는 느낌이 든다. 소설집의 시작에 앞서 책의 첫머리에 중국 작가 위스춘의 <시간의 서> 중 “대자연은 날씨 물후의 수많은 변화를 통해 우리 몸의 직관과 영감을 회복하도록 이끈다”라는 대목이 놓였는데,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너의 계절, 나의 날씨

이신조 지음

문학동네 | 320쪽 | 1만7000원

이어지는 소설 ‘여름철 기압 배치’에서 주인공 한솔은 쌍둥이 딸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탄생을 앞둔 설렘 속에서 그는 자신을 키워낸 할머니를 떠올린다. 이야기는 현재 한솔의 시점과 한국전쟁이라는 질곡의 인생을 살아낸 윗세대의 삶을 교차하며 따라간다. 날씨가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작품은 아니나 거대한 자연의 순환 속에 자리 잡은 개인의 삶을 그렸다는 점에서 ‘날씨, 계절, 시간, 변화, 존재’를 키워드에 두고 작업된 이번 소설집 전체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

‘오늘 서울은 하루종일 맑음’은 화자인 지수가 5월의 한강을 따라 걸으며 떠올리는 과거의 기억들을 따라간다. “맑은 날이었다. 이래도 되나 싶게 환한 햇빛과 투명한 공기, 생생하고 아찔한 기운이 눈꺼풀 안쪽과 콧속 점막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날 재생되는 기억은 고통에 가깝다. 강변의 화창한 풍경과 지수의 기억 속 연약한 이들을 집어삼키는 도시의 생리가 대비된다.

이신조 작가는 개인적 경험에서 이번 소설집을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5일 통화에서 “2020년 코로나 시기에 대학에 있었다. 학교도 우왕좌왕했고 모든 것이 일시 정지됐다. 온라인 강의만 녹화했고 학교에 가도 아무도 없었다. 그때 유일하게 한 것이 마스크를 쓰고 한 산책이었다”며 “계절과 자연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하지만, 결국 인간도 자연에 속해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소설집 전체의 제목인 ‘너의 계절, 나의 날씨’도 이때 떠올렸다”고 말했다.

‘펫로스, 겨울 편지’는 떠나보낸 반려묘에게 보내는 이인칭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너는 추운 겨울에 태어났다. 나는 네가 태어나던 순간을 모른다. 그러나 떠올릴 수는 있을 거 같다. 기상청 사이트 ‘날씨 누리’에서 십삼 년 전 1월 초순의 날씨를 확인하니, 밤이면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들이 내내 이어진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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