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는 게 늘 맘 같진 않지요. 그럴 때 가만히 눈을 감고, 오래 전 그 시절로 돌아가보는 겁니다. 지나온 세월만큼 켜켜이 앉은 먼지를 걷어내고 나면, 거기 얼마나 많은 내 인생 첫 순간이 반짝이고 있다고요. 한달에 한번, 시인 안도현이 그 첫 순간의 기쁨과 설렘을 독자들과 나눕니다.
내가 사는 골짜기를 구리실이라고 부른다. 어릴 적부터 구리실이 어디서 온 말인지 궁금했다. 나는 첫돌이 지난 뒤 구리실을 떠났고, 60년이 넘어 이 골짜기로 돌아와서 6년째 살고 있다. 내가 태어난 고향집 사랑방 옆에는 4월말이면 자잘한 흰 꽃을 피우는 아름드리 큰 나무가 있었다. 할머니가 생전에 이 나무를 무슨 나무라고 했는지 사촌 누님께 물었다. 구름나무라고 했다고 누님은 기억해냈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꽃을 피우는 구름나무 덕분에 구리실의 비밀을 늦게서야 풀 수 있었다.
지역에 따라 구름나무라고 부르기도 하는 나무는 귀룽나무다. 이 골짜기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름나무가 피어 올린 흰 꽃을 보고 구름실이라 불렀을 것이고, 세월이 지나면서 구르실 혹은 구리실로 그 발음이 변했을 것이다. 지금도 이 골짜기로 들어오는 산비탈에 귀룽나무가 한 무리 모여 산다. 길 위로 치렁치렁 가지를 늘어뜨리고 꽃을 피우는 귀룽나무를 보면서 나는 정말 구름골짜기, 그러니까 구리실로 돌아왔구나 하고 생각한다.
귀룽나무는 겨울을 걷어내지 못한 황량한 숲에서 맨 먼저 연둣빛 잎을 틔워내는 나무다. 3월 중순쯤 숲속에서 서둘러 새순을 연두연두 밀어 올리는 나무를 멀리서 만난다면 보나마나 귀룽나무다. 귀룽나무가 이른 봄에 첫번째 틔우는 첫 잎은 잎끝이 뾰족하다. 이 어린 순을 데쳐 무쳐 먹기도 한다고 하니 내년에는 한번 시도해볼 생각이다.
텃밭에 상추 모종을 사다 심은 지 한달이 지났는데도 모종은 앉은뱅이처럼 키가 크지 않는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한 수 가르쳐주신다. 상추 첫 잎을 따버려야 한다고. 맨 처음 올라온 떡잎을 떼어내야 상추 키가 큰다고. 들깨도 먼저 올라온 순을 따줘야 더 많은 들깨를 얻을 거라고 했다. 방울토마토 순도 가차 없이 따줘야 튼실한 걸 얻는다는 말도 보탰다. 첫 잎은 맨 먼저 싹을 내밀어 잎이 되지만 또 다른 잎들을 위해 자리를 내주는 잎이다. 훗날의 결실을 위해 과감하게 사라지는 용기 있는 잎이다.
작설차(雀舌茶)는 차나무의 어린잎이 참새 혀 크기만큼 자랐을 때의 찻잎을 말한다. 우전차와 함께 차나무의 첫 잎으로 만드는 고급 차로 분류된다. 그리고 감나무에서 처음 나온 감잎으로 감잎차를 만든다고 한다. 나는 감나무에서 첫 잎이 나올 때, 그 첫 잎을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한다. 감나무 첫 잎은 여리여리한 듯하면서도 당차고, 겁이 많은 듯하면서도 자신감이 넘친다. 딱딱하고 메마른 우듬지에서 어떻게 그런 강력한 폭발력이 생기는지. 반지르르한 이파리가 햇빛을 끌어당기는 힘이 느껴지는 게 감나무 첫 잎이다.
뽕나무 첫 잎을 딸 때가 다가온다. 누에를 치지 않아 밖으로 나가면 뽕나무가 지천이다. 새끼손가락 크기만큼 자란 뽕나무 새잎은 한장 한장 따지 말고 훑어내리면서 따야 제맛이다. 그때 첫 잎이 가지 끝을 떠나는 소리, 호도도도독…. 그 소리를 몇번 들어야 연두가 초록으로 바뀌게 되고 봄이 여름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첫 잎, 입에 담고 소리를 내보면 입속에 달착지근한 연초록 물이 고일 것 같다. 첫 잎, 처음 누구를 만나러 가는 발소리 같고, 처음으로 이 세상을 만나는 순결의 다른 말 같기도 하다.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만, 초심이라는 한자어의 관념을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으로 만들어주는 말이 첫 잎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첫 잎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자주 써도 좋겠다. 풍진세상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가련한 나도, 세속적인 욕망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당신도 첫 잎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한때 모두 첫 잎이었다. 나도 스물여덟살 아버지와 스물세살 어머니의 첫 잎이었다. 첫 잎이 첫 잎으로 누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금세 초록이 되고 단풍으로 물든다. 세상에는 또 다른 첫 잎들이 곳곳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제 새로 돋아나는 첫 잎들을 위해 무엇을 내놓아야 할지, 받은 것을 어떻게 되돌려줘야 할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안도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