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동티베트 차마고도 기행 3편 보이차의 길
보이차 산지, 쿤밍 최남단 시솽반나 지역…강수량 많고 따뜻한 날씨

(2편에 이어) 오후 2시 반 따리 고성을 떠나는 버스가 출발했다. 세 시간이면 리장(麗江)에 도착할 것이다. 양송유 씨와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짐 찾아 나오며 헤어졌다. 양씨의 따리 고성 안내는 세심하고 정겨웠다. 물론 무료였다. 외지인에게 고향 지역을 알리고 싶어 한 따리 바이족(白族) 양씨의 호의에 따른 것이었다. 중국 유학 3년 경력의 춘남씨 통역 실력도 양씨의 가이드 덕택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 여행 초반부터 예기치 않게 현지인의 환대와 도움을 받았다. 윈난 사람 특히 중국 소수민족에 대한 첫인상이 우리 셋 모두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았다.
차창 밖으로는 얼하이 호수의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오후의 햇살을 받아 찬란한 모습이다. 바이족 전통 가옥들이 호숫가에 듬성듬성 늘어선 풍경도 정겹다. 버스 앞자리에서 좌우로 보였던 창산과 얼하이 호수가 사라지면서 험준한 산악 지대가 펼쳐진다. 고산 지대로 들어서며 계곡 또한 깊어짐을 느낀다. 지나온 쿤밍과 따리의 평균 해발고도는 1900m와 2000m였지만 곧 만날 리장과 샹그릴라는 2400m와 3200m 수준이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윈난 차마고도의 복판을 향해 달리고 있음을 조금씩 실감하게 된다.
버스 타기 직전 게스트하우스에서 양씨의 남자친구가 따라준 보이차의 여운이 아직까지 혀끝에 남아 있다. 집에서 새벽마다 마실 때는 익숙한 관성의 맛이라 특별히 인지하진 못했지만, 산지(産地)에서 마시는 보이차는 나에겐 특별했다. 비 갠 후 숲속을 거닐 때 느꼈던 축축한 흙내음이랄까. 청아하고 묵직한 향취가 혀끝을 간질이다 온몸 세포로 퍼지는 느낌이었다.
보이차는 수확된 찻잎을 증기로 쪄서 말린 후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친다. 이때의 후반 처리 방법에 따라 생차(生茶)와 숙차(熟茶)로 구분된다. 아까 양씨 남자친구가 우리에게 내놓은 건 생차였다. 자연 발효 과정을 거쳐 수년간 공들여 숙성시켰을 터이니 꽤 고가의 차를 대접받은 것이다. 반면에 내가 집에서 주로 마시는 숙차는 인위적 강제 발효를 통해 단기간에 숙성된, 대량 생산 제품이다. 나로선 생차와 숙차의 맛 차이를 명확히 구별하진 못하지만, 마신 지 두세 시간 넘도록 입속에 이렇게 여운이 남는 건 기분 좋고 특이한 경험이다. 대중 가격 숙차에 길들여진 입맛의 소유자가 보이차 산지에서 호강을 한 셈이다.
엄밀하게 말해 보이차 산지라 하면 따리(大理)가 아니라 쿤밍 최남단 시솽반나(西双版納) 지역이다. 동남아 미얀마와 라오스의 접경이면서 강수량이 많고 일 년 내내 따뜻한 날씨가 유지된다. 찻잎이 자라기엔 최적의 환경인 곳이다. 이 지역 소수민족들은 수백 년 된 차나무인 고차수(古茶树)에서 찻잎을 수확해 오랜 세월 대를 이어가며 차를 만들어왔다.
이렇게 전통 방식으로 제조된 차는 200km 북쪽의 푸얼현으로 모아진 후 외부 상인들에게 팔려나갔다.
북쪽으로 따리, 리장을 거쳐 티베트 고원으로, 그리고 동쪽으론 쿤밍을 거쳐 중원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이다. 푸얼현은 이를테면 시솽반나에서 재배된 차들의 유통 집산지이면서 외부 세상으로 연결되는 삼거리 위치였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이들 차의 이름은, 원산지 시솽반나가 아닌 집산지 푸얼의 이름을 따라 푸얼차(보이차)로 불리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다.
티베트 고원 유목민들에게는 물론 중국 황실에서까지 널리 애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렇게 오랜 역사의 푸얼차를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2007년 ‘푸얼’이란 명칭을 더 큰 도시의 지명으로 사용하는 행정 구역 개편을 단행한다.
보이차의 유래가 된 작은 마을 푸얼현을 ‘닝얼 하니족 이족 자치현’으로 지명 변경하는 대신, 40여 ㎞ 남쪽에 위치한 상급 도시 쓰마오시(思茅市)를 푸얼시로 지명 변경함과 동시에 더 넓은 행정 구역으로 확대 개편한 것이다.
근래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는 ‘푸얼’은 옛 보이차 집산지였던 ‘푸얼현’이 아니라 과거 지명 쓰마오였던 지금의 ‘푸얼시’이다.
오늘날 대중적으로 대량 유통되는 보이차는 대부분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재배된 찻잎이 주원료다. 심은 지 얼마 안 된 어린 차나무들에서 인위적으로 수확량을 늘리는 것이다. 계단식 경작지에서 재배된다는 의미에서 대지차(台地茶)라고도 불린다. 반면에 수백 년 수령(樹齡)의 차나무에서 전통 방식으로 제조되는 고수차(古树茶)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희귀성 고가품이 되어간다. 얼핏 인삼과 산삼의 차이에 견줄 수 있다. 따리 출발 전 우리가 대접받았던 보이차도 생차이긴 하지만 고수차가 아닌, 대지차였을 것이다.
우리가 탄 고속버스는 G5611번 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또 달린다. 가로막힌 산악 지대를 터널로 뚫었거나 강과 계곡 사이를 다리로 연결한 현대식 고속도로인 만큼 길이 곧고 속도감이 있다. 반면에 바로 인근으로는 G214 도로가 우리와 가까웠다 멀어졌다를 반복하면서도 꾸준하게 나란히 이어지고 있다. 그 옛날 마방들이 푸얼현에서 잔뜩 매입한 푸얼차를 말 등에 싣고 걸었던 바로 그 옛길 차마고도(茶馬古道)이다.
우리가 달리는 G5611 도로는 일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이긴 하지만 매우 짧다. 따리-리장 간 200km에 불과할 뿐이다. 차창으로 보이는 바로 옆 차마고도는 남쪽 멀리 시솽반나에서 시작되어 푸얼과 따리를 지나왔다. 그리고는 리장과 샹그릴라를 거쳐 서쪽 멀리 티베트 고원까지 수천 킬로미터를 이어갈 것이다. 그러나 G214 도로는 좁고 험한 옛길이다. 구불구불 지그재그의 연속이다. 거북이처럼 엉금엉금 기어가야 할 듯 무척이나 답답하게 느껴진다.
우리와 거의 겹쳐서 나란히 이어지던 차마고도가 갑자기 멀어졌다. G214 국도는 북쪽으로 여전한 방향이지만 우리가 달리는 G5611 고속도로가 동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리장에 거의 다 왔고, 20~30㎞ 남겨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방금 헤어진 G214 차마고도와는 며칠 후 샹그릴라 가는 길에 다시 만날 것이다. 그때는 나란히가 아니고 직접 그 길 위를 달리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