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화인류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저자가 분석한 ‘신’의 존재 이유
인간의 뇌가 안정적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최대 인원 150명
생존 위해 인간 집단 커지면서 결속감 유지 장치 요구돼
종교 의례, 소속감 부여하는 데 가장 강력한 효과
종교 간 대립이 국가 간 전쟁 또는 한 국가 내 내전의 불씨이자 불쏘시개가 된 경우는 너무나 흔해서 일일이 사례를 제시할 필요도 없다. 중세 기독교인들의 마녀사냥부터 현대 근본주의 이슬람의 ‘명예살인’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이름으로 저질러진 인권유린도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그러니 개별 종교가 제아무리 경전 속에서는 고귀한 말을 늘어놓더라도, 종교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건 자연스럽다.
인지도 측면에서 단연 종교 비판의 선두 주자라 할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2006)에서 ‘종교는 망상’이라고 단언했다. 무신론의 또 다른 대표 주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이듬해 <신은 위대하지 않다>를 통해 도킨스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반면 마르크스주의 문학비평가 테리 이글턴은 <신을 옹호하다>(2009)에서 “어떤 소설에 대해 재미있는 부분도 있고 무서운 부분도 있는데 끝에 가서는 무척 슬프다는 식의 평을 해놓고는 문학비평가를 자임하는 사람과 비슷하다”며 도킨스와 히친스를 비판했다.

신을 찾는 뇌
로빈 던바 지음 | 구형찬 옮김
아르테 | 372쪽 | 3만원
이들 모두 화끈한 입담을 자랑하는 유명 지식인들이지만, 정작 핵심적인 주제는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종교는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영국 진화인류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로빈 던바의 <신을 찾는 뇌>는 종교에 대해 윤리적이거나 철학적인 판단을 내리는 대신 왜 종교가 생겨났으며, 왜 21세기에도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데 집중하는 책이다.
저자는 1993년 발표한 논문에서 한 인간이 안정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최대 150명이라고 주장해 유명해졌다. 이른바 ‘던바의 수’라고 불리는 이 개념은 인간의 두뇌가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발달했다는 ‘사회적 뇌’ 가설에서 나왔다. 원숭이·유인원·인간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뇌의 특정 영역의 부피에 따라 결정되는데, 이에 따라 계산을 해보면 원숭이와 유인원은 50개체, 인간은 150명이 최대치라는 것이다. 원숭이와 유인원의 경우 ‘50개체’는 서로 그루밍(피부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최대치를 뜻한다. 인간의 경우 150명은 조건 없이 도움을 제공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치다. 같은 고조부모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씨족의 규모가 평균적으로 150명이다.
인간은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집단의 규모를 점점 키워왔다. 문제는 집단의 규모가 친밀성의 한계인 150명을 넘어갈 경우 어떻게 집단 내부의 결속력을 유지할 것인지다.
저자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여기서 찾는다. 인간 집단이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장치로는 웃음, 노래, 춤, 감동적 스토리텔링, 잔치(공동 식사 및 음주), 종교 의례 등이 있다. 이 장치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엔도르핀 시스템을 촉발하고 고통에 대한 역치를 높여줌으로써 소속감과 신뢰감을 만들어낸다. 원숭이·유인원의 그루밍과는 달리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 없이도 친밀감을 형성해낸다는 점에서 ‘원거리 그루밍’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인간이 ‘던바의 수’를 넘어서는 초대형 공동체를 꾸릴 수 있는 것은 이 장치들 때문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종교 의례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며, 가장 큰 범위의 집단에 소속감을 부여할 수 있다.
종교 비판자들은 인격을 가진 절대자에 대한 믿음을 합리적·이성적 사고의 결여와 연관시키지만, 저자에 따르면 애니미즘이나 샤머니즘의 수준을 벗어난 종교는 오랜 인류 진화의 역사가 만들어낸 최신 발명품에 가깝다. 인격신을 믿으려면 저자가 ‘정신화 능력’이라고 부르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는 타인의 마음 상태를 떠올리는 능력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신화 능력 없이 “우리가 직접 경험하는 세계에서 한발 물러서서 또 다른 평행 세계의 존재를 상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격신을 믿는 능력은 원숭이나 유인원은 꿈도 꿀 수 없었던, 호모 사피엔스 수준의 고도의 지능이 있어야 획득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하이델베르크인과 네안데르탈인도 분명 어떤 형태로든 언어가 있었지만, 현생인류의 언어만큼 정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특히 깊은 동굴 은신처에서 초자연적인 힘에 대해 어느 정도 짐작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종교를 공식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필요한 복잡한 진술로 옮겨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기독교나 이슬람교처럼 고도의 도덕적 권위를 지닌 신의 존재를 상정하는 교리종교는, 공동체가 “불법과 내전을 통해 자멸하지 않고”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였다. 인구 규모가 폭증하면서 가중된 공동생활의 스트레스를 제어할 종교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신은 인간 집단의 규모가 100만명을 넘어서는 시점에 나타났다. 오늘날의 주요 종교가 인류 사회의 복잡성이 극적으로 증가했던 기원전 1000년대에 출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저자의 통찰은 서로 다른 종교 간 갈등과 특정 종교 내부의 분파 갈등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종교는 공동체 내부의 통합을 위해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 대 그들’의 대립 구도를 활용한다. 이 때문에 공동체의 규모가 커질수록 다른 종교에 대한 적대심의 강도도 커진다.
세계에 대한 과학적 이해의 수준이 지금보다 더욱 발전하면 종교는 사라질까.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종교는 철저히 인간적인 특성이다. 종교의 내용은 장기적으로 분명히 변화하겠지만, 좋든 싫든 그것은 우리와 함께 남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