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나한테 싸대기 맞는다” 전두환, 6공 실세 싹 불러 협박

2025-04-02

노태우 비사

제2부. ‘5공 청산’과 전두환·노태우 갈등

3회. 전두환 ‘차라리 암살범 보내 날 죽여라’

골프 치던 전두환, 6공 핵심 전격소환

전두환 전 대통령이 6공 청와대를 향해 본격적인 포문을 연 것은 1988년 11월 8일이었다. 이날 전두환은 아침 일찍 군 골프장인 남성대(당시 경기도 성남 소재)에서 골프 약속이 있어 집을 비웠다.

연희동 집은 사위 윤상현(현 국민의힘 의원)이 지키고 있었다. 윤상현은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 전두환의 딸 효선을 만나 1985년 졸업과 동시에 결혼했다. 윤상현은 석사장교(석사학위 취득자를 특채해 6개월간 훈련으로 군 복무를 대체하는 혜택을 주었던 제도)로 군복무를 마친 다음 유학을 떠날 예정이었다(이후 윤상현은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귀국해 정치인으로 변신했으며, 2005년 효선과 이혼했다).

전두환의 큰아들 재국은 당시 미국 유학 중이었다. 재국은 귀국하길 원했으나 전두환이 ‘지금 들어오면 너도 잡혀간다’며 막았다. 둘째 아들 재용 역시 미국 뉴욕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있었다. 막내아들 재만은 아직 고등학교 2학년. 아버지를 수발할 아들이 없어 사위가 연희동 집을 지키며 메신저 역할을 했다. 마침 윤상현은 얼굴이 알려지지 않아 행동이 자유롭기도 했다.

8일 오전 허문도 전 통일원 장관이 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허문도는 5공 시절 ‘노태우는 배신한다’며 후계 임명에 반대했었다.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그는 6공 출범 이후 ‘5공 청산’ 관련 움직임을 열심히 수소문하고 다녔다. 그 결과 ‘이미 다 잡아넣기로 돼 있다’며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주장해 왔다. 그가 “급한 일이니 각하께 빨리 전달해 달라”며 편지를 건넸다.

사실 전두환 친인척 문제에 대한 처리 방침은 이미 9월 만들어진 ‘5공 청산 비밀보고서’에 명시돼 있었다. 보고서는 결론(법적 처리 문제)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해서는 자진 해명 등의 조치가 있을 경우 사법적 처리를 면제함이 온당하나, 기타 친인척 비리에 대하여는 증거가 있으면 사법적 심판을 받도록 하여 제6공화국의 단호한 비리 쳑결 의지를 보이는 것이 금후 정치 발전과 공직기강 쇄신에 귀감이 되리라 보임’이라고 적었다.

그런데 노태우 대통령은 보고서와 다른 말을 했다. 노태우는 외유를 떠나기 전날인 11월 2일 심야 통화에서 전두환에게 “기환이 형님(전두환의 형 전기환)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전두환 회고록에 따르면, 그날 밤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는 따로 전기환의 부인에게 전화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다(노태우 비사 2부 2회 참조).

모두 거짓말이 됐다. 노태우 대통령 내외가 순방을 떠나자마자 검찰은 보고서대로 움직였다. 검찰에 소환당한 친인척들은 연희동을 찾아 전두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전두환은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마침내 전두환 부부가 자식처럼 아꼈던 막내 처남 이창석에 대한 세무조사가 7일 시작됐다. 전기환도 구속할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 허문도의 편지는 이런 정황에 대한 보고였다.

전두환은 남성대에서 점심을 먹던 중 편지를 전달받고는 “당장 집으로 가자”며 일어섰다. 전두환이 가장 괘씸하게 생각하는 ‘노태우의 거짓말’이 확인된 순간이다. 전두환은 귀가하는 차 안에서 6공 핵심을 연희동 집으로 호출하라고 지시했다. ‘저녁식사 같이 하자’는 연락을 받은 청와대의 최병렬 정무수석과 박철언 정책보좌관, 민정당의 박준병 사무총장과 김윤환 원내총무가 급히 홍제동 스위스그랜드 호텔에 모여 대응방안을 사전조율한 다음 함께 연희동으로 이동했다.

전두환 ‘노태우 나한테 귀싸대기 맞는다’

예상대로 전두환은 입을 열자마자 격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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