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스(미국 부통령)는 물러가라! 꺼져라!”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옥스퍼드셔 주 코츠월드의 시골 마을 ‘딘’. 원래 카페, 펍 등 상점이 전혀 없어 전형적인 영국 시골의 소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이 곳은 최근 유명 인사들과 부유층의 휴가지로 사랑 받으며 번잡해지기 시작했고 교통 체증, 집값 폭등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에 지역 주민들이 항의 시위를 열어 반발하고 있다고 지난 1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젤렌스키가 당한 굴욕, 밴스에게 돌려줘야”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최근 가족과 함께 딘을 찾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밴스 부통령은 먼저 켄트 주에서 데이비드 라미 영국 외무장관과 낚시를 겸한 양자 회담을 가진 뒤 코츠월드의 딘으로 이동해 지역 유명 인사가 소유한 18세기 저택에 가족과 머물렀다.
이 소식이 전해진 12일, 딘에서 3마일(약 4.8km) 정도 떨어진 인근 마을 찰버리에서는 주민과 활동가 등 100여명이 모여 ‘환영하지 않는 파티(Not Welcome Party)’를 열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이나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는 문구와 “밴스는 집에 가라” “꺼져라”라는 메시지가 적힌 피켓, 케이크를 들고 밴스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냈다.

국제 원주민 권리 단체인 서바이벌 인터내셔널의 조너선 마조워 홍보 책임자는 “(밴스 부통령을 경호하는) 엄청난 경찰력과 비밀 경호국으로 인해 일반적인 시위를 할 수 없다”며 “우리는 마을 곳곳에 피켓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데, 그마저도 일부는 철거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도로와 산책로는 폐쇄됐고 차량은 전부 수색당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시위 참석을 위해 70마일(약 112km)이나 떨어진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주 바스시에서 온 여성 나타샤 필립스는 “JD 밴스, 전쟁 영웅을 소파에 앉아 괴롭힌 남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을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밴스 부통령을 만났을 당시, 밴스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려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의 표현도 하지 않는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몰아붙인 일을 비판한 것이다.

필립스는 “그가 젤렌스키 대통령을 대했던 방식은 정말 혐오스러웠다”며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영웅이다. 우리는 그들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맞서는 모습에 감명을 받는다. 그런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여기 왔다”고 밝혔다. 주민 루 존슨도 독일 매체 슈피겔에 “우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당했던 것과 같은 '환대'를 (밴스 부통령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관련 미국을 규탄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은퇴한 노조 활동가인 스티브 에이커스는 “가자지구의 굶주리는 아이들을 보면 더욱 참기 어렵다”며 “이런 일이 벌어지는 데는 미국 정부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유명인사들 휴가·이사…“조용한 시골 마을 사라져”
이날 시위의 이유가 비단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문제 등 정치적인 문제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가디언, 로이터 등은 “‘조용한 시골 마을’을 잃어버린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진 것도 시위가 일어난 원인”이라고 짚었다.
딘, 찰버리 등 옥스퍼드셔 북서부 지역은 본래 조용하고 소박한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나 최근 유명 인사들과 부유층의 휴가지로 주목받으면서 식료품점, 고급펍, 스파, 회원제 사교클럽 등이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슈피겔에 따르면 최근 부유한 미국인들과 영국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그 인기는 더 높아졌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도 딘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통 체증이 생기고 집값이 치솟았다. 가디언은 “찰버리에서 침실이 3개 있는 현대식 주택을 구하려면 50만 파운드(약 9억 3800만원)에 육박한다”며 “지역 젊은이들이 집을 구하는 게 어려워 졌다”고 전했다.
다만 가디언은 “지난달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도 찰버리의 한 펍에서 목격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해리스 전 부통령의 방문 때에는 시위가 열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