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주가 성가신 민원인인가?"
구자은 LS그룹 회장이 '반강제'로 국회에 소환됐다.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 의무를 명문화한 상법 개정안을 처리하던 중 여당 의원으로부터 논란의 발언이 재조명되면서다. 상법 개정을 놓고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구 회장이 그 필요성을 각인시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1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날 상법 개정안 찬성 토론 자리에서 구자은 LS 회장을 겨냥해 "주주를 성가신 민원인 이상으로 취급하지 않는 우리 기업인의 인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런 경영자에게 주식회사 경영자라면 주주 전체의 이익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소영 의원이 상법 개정과 구자은 회장을 연결한 것은 일련의 논란 때문이다. 구 회장은 '인터배터리 2025' 행사장에서 비상장 계열사 중복상장을 둘러싼 취재진의 질의에 "작은 회사가 성장하려면 계속해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조달 방법이 제한적"이라며 "중복상장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상장 후 주식을 사지 안 사면 되지 않느냐"고 말해 도마에 올랐다.
현재 LS그룹은 LS일렉트릭 자회사 KOC전기와 슈페리어에식스 자회사 에식스솔루션즈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모기업 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한 발언이다.
후폭풍은 상당했다. 당일 이 소식이 확산되자 증권시장에서 LS일렉트릭 등 LS 계열사 주가는 최대 10%까지 곤두박질쳤다. 투자자 사이에선 구 회장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요구도 잇따랐다.
물론 구 회장에게도 작심발언에 대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미국 권선(에나멜와이어) 1위 에식스솔루션의 경우 LS가 인수하면서 상장폐지 후 재상장하는 회사인데, 미국 전력 시장이 활황이어서 나스닥에 상장할 수도 있었지만 LS는 국내로 방향을 틀었다. 즉, 우리나라 투자자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는데, 왜 이 점은 주목하지 않느냐는 게 구 회장의 속뜻이다. LS 측은 논란 직후 이 같은 해명을 내놨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선 다소 무책임한 얘기로 들릴 수 있다는 게 전반적인 시선이다. 중복상장이 회사나 투자자 모두에게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어서다. 모기업 주가나 사업의 가치가 희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너일가 등 지배주주는 얻는 게 있다. 추가 자금을 쏟지 않고도 지배권을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사업 자금까지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구 회장이 상법 개정 민심에 불을 지폈다는 반응이 속속 감지되고 있다. 주주의 이익을 경시한 이사의 부적절한 처신이 결국 회사와 주주 모두에게 피해를 입혔음을 몸소 증명한 셈이기 때문이다.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가 충실 의무를 지켜야 하는 대상을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고 상장회사의 전자 주주총회 도입을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배구조 최상단 ㈜LS는 증시에서 연일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영업기밀 유출 건으로 격화하는 LS전선과 대한전선의 분쟁에 모기업이 참전하면서다. 대한전선을 계열사로 둔 호반그룹은 최근 국내 한 증권사를 통해 LS 주식을 사들였다. 회사 측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고 선을 그었으나, 시장에선 호반이 LS를 압박하기 위해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여파에 ㈜LS 주가는 전날 장중 15%까지 치솟았고, 이날도 오름세를 유지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련의 발언에 타기업과의 분쟁까지 겹치면서 구 회장이 더욱 주목받는 모양새"라면서 "그룹 총수로서 이번 사태를 빠르게 수습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