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야당 주도 '상법 개정안' 본회의 통과
삼성·현대차·SK 등 '먹튀' 사례 재현 우려
행동주의 펀드 공격, 지속적 증가 추세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끝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으면서, 재계에서는 기업의 장기적 발전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재계는 이번 개정안이 기업 이사회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주주의 이익을 더욱 강조하도록 만들면서 행동주의 펀드들이 이를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단기 수익을 목적으로 한 해외 자본이 기업 경영에 개입한 후 배당 확대, 자산 매각 등의 압박을 가하고, 이후 차익을 실현한 뒤 철수하는 '먹튀' 전략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 상법 개정안 통과, 기업 경영 환경 변화 예고
14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는 전날 본회의를 열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야당 주도로 추진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고,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계는 이번 개정안 통과로 인해 글로벌 헤지펀드 B캐피털이 국내 기업 A사에 개입하는 상황과 같은 사례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 B캐피털은 기업A의 주식을 꾸준히 매집한다. 기업A는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신규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B캐피털은 '단기 수익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강하게 반대한다. 그러던 중, B캐피털은 기업A 이사회가 '주주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투자 결정을 내렸다'며 상법 개정안을 근거로 이사진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한다. 소송을 피하기 위해 기업A는 배당 확대 및 자산 매각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이후 기업A는 투자자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투자 계획을 전면 철회하고, 그 자금으로 배당금을 대폭 상향한다. 이에 따라 단기적으로 주가는 급등했고, B캐피털은 높은 가격에 보유 주식을 대거 매도하며 수천억원의 차익을 실현한다. 이후 B캐피털은 '기업 경영에 더 이상 개입할 필요가 없다'며 기업A의 주식을 모두 정리하고 시장에서 철수한다.
결국 단기 배당 확대로 인해 기업A의 장기 성장 전략은 무너지고 주요 인수합병(M&A), 연구개발(R&D) 프로젝트도 중단될 위기에 놓인다.
◆ 과거에도 반복된 '먹튀' 사례들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에 개입한 사례는 가상 시나리오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해외 투기 자본이 국내 대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한 사례가 여럿 존재한다.
2019년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가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을 저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현대차가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하자,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의 합병에 반대하며 지분을 확보하고 개입을 시작했다.
엘리엇은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총 7조원 규모의 배당을 요구했으며, 해외 경쟁사 출신 인사를 감사·이사직에 등재하려는 압박을 가했다. 이에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을 무기한 보류하고, 엘리엇의 일부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2003년 헤지펀드 소버린은 1768억원을 투입해 SK그룹의 지주사인 SK㈜ 주식 14%를 매입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분식회계 문제를 이유로 최태원 회장의 교체를 요구하며 본격적인 경영권 분쟁을 일으켰고, SK는 이를 방어하기 위해 1조원이 넘는 비용을 투입해야 했다. 결국 소버린은 2년 만에 약 1조 원의 차익을 남기고 철수했다.
또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도 있다. 론스타는 2003년 당시 외환은행을 2003년 1조3834억원에 사들인 뒤 구조조정을 거쳐 기업 가치를 높였다. 이후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매각 차익과 배당금을 합치면 무려 4조원이 넘는 돈을 챙기고 한국에서 철수했다.
실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해외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은 최근 몇 년 사이 급증하는 추세다. 대한상의에 따르면,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해외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은 2019년 8건에서 2023년에는 77건으로 증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경영진이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투자 결정을 내릴 때마다 소송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며 "결국 기업의 장기 성장보다는 단기 주주 이익을 우선시하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kji0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