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경쟁력 좌우할 전력 기자재 산업

최근 경제 뉴스는 인공지능(AI)이나 로봇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미국과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수백 조 원을 투자한다는 뉴스를 보고 있으면 돈의 단위가 무감각해지기까지 한다. 지구 한 편에서는 무력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국가 간 운명을 건 돈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 자본주의’의 등장이다.
미래 기술을 놓고 벌어지는 돈의 전쟁은 개별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경쟁이 불가능하다. AI 분야의 경우 정부가 천문학적 AI 투자를 책임지고 확대해서 모든 산업 기반에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신 경제 체제’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제네시스 미션’은 AI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선전포고며 중국은 반도체 굴기와 전기화 가속화로 AI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한 체제 전쟁을 하고 있다.
AI 확산에 전기 수요 급격히 늘며
국가 경쟁력 핵심 된 전력 인프라
전력 기자재 첨단산업 부상에도
원자력 등에서만 국내 기업 우위
국산화 통해 미래산업 키우면서
기술 확보하고 외화 유출 막아야
이러한 AI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고대역폭메모리(HBM) 확보와 함께 중요한 요소는 전기의 안정적 공급이다. 전력 산업이 새롭게 각광을 받는 이유다.
태양광·해상풍력, 커지는 중국 영향력
파리협정 이후로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청정 전기화가 재생에너지를 새로운 산업으로 인식하게 했다면 이제는 AI 데이터센터(AIDC)의 확산과 반도체 공장 등의 막대한 전력 수요 증가가 전력 산업 전반을 새로운 먹을거리로 인식하게 하고 있다.
AI의 학습과 추론을 담당할 AIDC는 ‘전기 먹는 하마’인 동시에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송전-배전-소비’에 이르는 전력 산업 밸류체인(VC) 전반에 걸친 개혁을 일으키고 있고, 그 결과 전력 기자재가 새로운 첨단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전력 인프라는 더 이상 보조 산업이 아닌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이다. 거대한 에너지 시장의 변화 속에서 전력 기자재 산업의 국산화 투자와 육성을 통한 독보적 경쟁력 유지 여부가 산업 정책 차원을 넘어 에너지 주권과 국가안보 문제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지만 산업 측면에서 보면 태양광 산업은 사실상 중국의 독점 구조에 가깝다. 중국은 점유율로 보면 폴리실리콘(96%)과 웨이퍼(97%), 모듈(80%)의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했다. 국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2024년 기준 한국 태양광 셀 시장에서 중국산 비중은 95%를 넘어섰고, 불과 5년 전 50%에 달했던 국산 비중은 5% 수준으로 급락했다. 단기적인 보급과 가격 경쟁 중심 정책이 누적된 결과다.
배터리 산업 역시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삼성SDI 등 K-배터리 3사의 글로벌 전기차용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2025년 16.5%로 전년 대비 5.3%포인트 하락했고 매년 하락하고 있다. 반면 중국 기업의 점유율은 CATL과 BYD만 해도 50%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특히 배터리는 에너지저장장치(ESS)를 통해 전력망과 직접 결합하며 단순 제조업을 넘어 전력 기자재 산업의 핵심 구성 요소로 편입되고 있다.
해상풍력도 빠르게 중국 중심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2022년 중국은 전 세계 해상풍력 신규 설치의 58%를 차지했으며, 향후 2030년까지 누적 설비 기준 점유율 역시 절반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전 세계 풍력 공급망에서 중국산 제품 비중은 60% 이상으로 확대됐다. 터빈뿐 아니라 설치 선박과 해저케이블, 유지·보수 인력까지 패키지로 공급하는 구조다. 국내 해상풍력 프로젝트 상당수는 설치뿐 아니라 고장 발생 시에도 중국 선박과 기술진에 의존해야 하는 취약한 구조를 안고 있다.
실제로 태양광을 최초 개발한 독일의 태양광 산업은 중국 태양광에 밀려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중국 전기차에 밀린 폴크스바겐은 독일 내 일부 공장 문을 닫고 있다. 무턱대고 외국산에 의존하다가는 국내 산업의 씨가 마를 수 있다.
기술 자립도 낮은 HVDC 국산화 절실
물론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도 있다. AI 확대로 원자력 발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원자력의 발전 설비 기술은 최고 수준인 만큼 적극적으로 수출 활로를 열어야 한다. 완벽하게 국산화에 성공한 가스터빈은 일론 머스크의 xAI에 수출하는 등 AI 확대 흐름 속 가장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AIDC 확산에 따른 글로벌 전력망 교체 수요 덕분에 효성중공업과 HD현대일렉트릭, LS일렉트릭, 일진전기의 변압기·차단기 등 송전과 변전 기자재 부문도 수주 호조를 보이고 있다. 2025년 3분기 말 기준 이들 4개사의 수주 잔액 총합은 33조원을 돌파하며, 5~6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황이다.

글로벌 전력 기기 및 케이블 시장 규모는 2030년 약 3718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며, 2023년 이후 연평균 6%대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하지만 변압기와 차단기 등 초고압 전력 기기는 계약에서 납품까지 2~3년에 이르는 긴 리드 타임을 가진다.
현재의 수출 실적은 이미 체결된 수주의 결과일 뿐 향후에도 동일한 호황이 지속할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관세 전쟁 틈바구니에서 일부 품목에 한정된 만큼 장기적으로 중국산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향후 전력망의 핵심이 될 초고압직류송전(HVDC)의 기술적 자립도는 매우 낮아 국산화가 절실하다. 특히 HVDC는 전기화 시대의 핵심 인프라다. 장거리·해저 송전에 필수적인 기술로, 글로벌 HVDC 시장은 2028년까지 연평균 5.5% 성장해 약 149억 달러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전력 기자재 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일부 기자재의 수출 성과가 아니라, 전력망 연계를 위한 초고압 변압기와 변전기, 차단기를 비롯한 HVDC 관련 기술과 AI 기반 전력시스템, 소형모듈원전(SMR), 수소 등 미래 전력 인프라 전반으로 경쟁력을 확장할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AI 확대에 따른 글로벌 전력망 투자 규모는 2020년 약 3000억 달러에서 2030년 6000억 달러, 2035년에는 1조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궁극적으로 2050년에는 송·배전망 투자가 25조 달러에 이를 것이다. 글로벌 SMR 시장은 2035년까지 630조원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연평균 성장률 31%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린 수소 분야에서도 2030년까지 국내 청정수소 100만t 생산 체제 구축과 글로벌 수소 기업 30개 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력 소프트웨어 경쟁력도 높여야
이와 함께 간과해서는 안 될 영역이 전력 기자재를 실제 전력망에 통합·운영하는 전력시스템 설계와 소프트웨어 경쟁력이다. 계통 해석과 보호계전 설계, 에너지관리시스템(EMS), 디지털 트윈 기반 시뮬레이션 등이 없이는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 한국형 에너지 데이터 스페이스를 통해 에너지 데이터를 공유하고 활용하며 AI 활용을 통한 전력시장 효율화를 달성해야 한다. 향후 전력 기자재 산업 육성은 제조 역량에 더해 AI를 활용해서 계통 설계·운영 소프트웨어를 함께 수출할 수 있는 ‘시스템 패키지 산업’으로의 확장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전력 기자재 국산화의 필요성은 명확한 경제적 논리에 기반한다. 첫째, 외화 유출 문제다. 전력 설비는 초기 구매 비용뿐 아니라 기술 로열티와 유지·보수 비용이 수십 년간 지속해서 발생한다. 국가 기간시설에 투입되는 재원이 장기간 해외로 유출되는 구조다.
둘째, 시스템 종속(lock-in) 효과다. 송·배전망은 단일 설비가 아닌 거대한 시스템이다. 한 번 특정 해외 기술로 구축되면 이후 확장과 보수에서도 같은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향후 더 우수하고 저렴한 국산 기술이 등장하더라도 기존 시스템을 전면 교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셋째, 유지·보수 리스크다. 해상풍력처럼 접근성이 낮은 설비는 유지·보수 지연이 곧 발전 손실로 이어진다. 외국 기술진과 장비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신속한 대응이 어렵고, 단일 고장이 전체 시스템 마비로 확산할 위험이 크다.
넷째, 국가 안보와 보안 문제다. 전력망은 사이버 공격의 주요 표적이다. AI 기반 전력 시스템으로 갈수록 설비와 데이터가 결합하며 보안 리스크는 더욱 커진다. 외국산 설비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해킹과 백도어 위험을 구조적으로 내포한다.
마지막으로, 미래 산업 기회의 상실이다. 현재 비교우위가 없다는 이유로 국산화를 외면하면 기술 축적의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기술은 축적의 산물이며,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10년 후에도 우리는 수입국에 머물 수밖에 없다.
전력 인프라 사업서 국산 확대 필요
전력 기자재 산업을 첨단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첫째, 5년간 재정·세제·금융·규제 패키지 지원을 통해 가시적 성과를 창출해야 한다. 둘째, 전력 인프라 사업에서 국산 기자재 활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정책적 유인이 필요하다. 셋째, 전력산업에서도 AI를 적극 활용하여 전력전자·시스템 통합·운영 기술로 확장해 산업 생태계를 넓혀야 한다.
전력 기자재 국산화는 장기적으로 국가 비용을 줄이고 미래 첨단 먹을거리를 확보하고 에너지 주권을 지키는 가장 합리적인 투자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5년 안에 대한민국 경제의 글로벌 위상을 결정할 것이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


![[사설] 젠슨 황 “슈퍼칩 양산”…한국은 ‘AI 소닉 붐’ 올라탈 준비됐나](https://newsimg.sedaily.com/2026/01/07/2K77IUCT1K_1.jpg)

![[헬로IT] 미니탭, 제조 현장이 마주한 ‘데이터 이후’ 과제를 말하다](https://www.hellot.net/data/photos/20260102/art_17676006336361_33442f.png?iqs=0.6431141568154141)
![[ET시론]자율주행 경쟁의 중심은 기술이 아니라 '실증'이다](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1/05/news-p.v1.20260105.aa2d02f7560b4a1eb0e17fba516e288d_P3.jpg)


![현대차, 휴머노이드 ‘아틀라스’ 첫 공개…2028년 美 공장 투입[CEO 뉴스]](https://newsimg.sedaily.com/2026/01/07/2K77K7F22D_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