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보현우의 AI시대] 〈32〉AI에 피지컬(Physical)이 중요한 이유

2025-05-22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은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한국인을 설레게 만들었고, 세계인들의 기억에 '대~한민국'이라는 응원 구호를 새긴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이다. 이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이가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좋아하는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이다. 그는 네덜란드 축구 국가대표팀을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4강으로 이끌었던 세계적인 명장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5년 전인 2001년 거스 히딩크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을 맡으면서 기존 축구 전문가들과는 다른 진단을 내놨다. 그의 진단에 따르면 대한민국 축구의 약점이 발재간을 중심으로 한 기술력이 아닌 피지컬이라는 것이다. 당시 세계 축구를 주름 잡았던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축구 강국과 비교했을 때 세밀한 기술에서는 결코 뒤처지지 않지만, 신장·체중을 비롯한 피지컬과 90분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체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진단이었다.

그 결과 히딩크 감독은 축구협회가 추천하는 학맥, 인맥 중심의 국가대표 선발에서 벗어나, 유럽 선수 못지않은 기초 체력과 운동신경을 갖춘 선수들을 선발함으로써 대한민국 축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강력한 피지컬을 기반으로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더해 예선과 토너먼트에서 유럽 축구의 강국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격파하면서 4강에 진출한 것이다.

피지컬(Physical)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4반세기 전 한국 축구의 모습과 현재 인공지능(AI) 산업의 위상이 묘하게 닮아 있다. 이미 AI 산업계의 트렌드는 거대언어모형(LLM) 중심의 생성형(generative) AI에서 나만의 비서 역할을 수행하는 에이전틱(agentic) AI 시대로 옮겨갔다. 더불어 로봇(robot)에 AI를 결합한 피지컬 AI는 AI의 궁극적인 발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엔비디아(Nvidia)의 CEO인 젠슨 황(Jensen Huang)은 CES 2025 기조연설에서 수년 내 AI의 중심은 피지컬 AI로 옮겨갈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AI가 인터넷과 PC, 스마트폰에서 작동되는 시대를 벗어나 다양한 기기에 탑재됨으로써 제조, 물류, 건설, 농업, 의료, 에너지 등 제반 산업에 폭넓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특히,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등은 피지컬 AI의 대표적 활용 분야로 꼽힌다.

많은 이들이 한국이 미국, 중국에 이은 'AI 3대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GPU, 데이터센터와 같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의 국가적인 지원과 세계 최고 수준의 AI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물론 이는 AI 산업 발전을 위한 기본 인프라다.

이와 더불어 중요한 것이 AI의 현장 적용이다. 제조, 유통, 금융, 헬스케어 등 업(業)의 특성이 다른 산업에 AI가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버티컬(vertical) AI로 유연하게 변화하고, 적용되는 기술이 필요하다. 여기서 핵심적인 요소가 바로 AI와 로봇의 결합, 즉 피지컬 AI이다. 피지컬 AI는 제조, 물류뿐 아니라 산업용 기기가 사용되는 모든 분야, 즉 유통, 금융, 헬스케어, 건설, 농업 등 전 산업이 피지컬 AI의 영역이다.

대선을 앞두고 주요 대선주자들은 앞다투어 AI 산업 육성을 주요 공약으로 꺼내 들었다. GPU와 데이터센터를 강조하는 이들은 많지만, 현장에서 정작 필요한 피지컬 AI를 강조하는 이는 드물다.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여서 유권자의 표와 직결되지 않기 때문인 것인가?

그러나 젠슨 황의 주장이나, 로봇 기업을 인수한 삼성과 현대차그룹의 동향을 보면 피지컬 AI가 미래의 대세임은 분명하다. 미국 주식시장을 끌어온 대표적인 기술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구글, 엔비디아, 아마존, 메타, 테슬라 등 매그니피센트 7(magnificent 7)의 투자 동향과 AI 분야에서 우리를 앞서가는 강력한 경쟁자인 중국의 움직임에도 로봇 산업과 피지컬 AI의 중요성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다행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을 포함한 우리 민간기업의 움직임은 느리지 않다. 또 기계공학과 산업공학을 중심으로 피지컬 AI를 연구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자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정부가 나서서 산·학·연 간 유기적인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실질적 연결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또 우수한 연구자들이 해외로 유출되고, 뛰어난 창업가들이 국내에서 비즈니스를 포기하고 더 높은 기업가치를 찾아 해외로 떠나는 것을 그냥 지켜볼 수는 없다. 이제 국가가 나서서 AI 기술과 산업을 접목한 우수한 기업이 이 땅에 뿌리내리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AI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본격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황보현우 서울대 산업공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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