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곳. 이재명 정부의 인재상(人材像)은 이 단어로 압축되는 듯하다. 박진영 대중문화교류위원장 등의 인사를 발표하며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전한 대통령의 당부에서 언급됐다. 이 대통령은 “공직자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가 되어 현장을 섬세하게 살피고, 그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과감한 변화를 만들어 가며 한계를 돌파하는 송곳 역할을 해 달라”고 했다.
이 대통령, 송곳 역할 인재 원해
과감한 변화로 한계 돌파 기대
정 대표, 같은 자리 후벼파기만
이 대통령은 송곳 같은 돌파를 원한다. 스스로 그런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이려 한다. 국무회의, 타운홀 미팅, 현장 회의 등에서 갈등 현안을 꼼꼼하게 듣고 속사포 질문을 한다. 해법이 될 포인트를 탐색하고 원샷원킬로 송곳을 찔러 넣는다. 수해 현장 상황을 보고받을 때는 비 올 때마다 막히는 배수로 덮개를 콕 집어낸다. 돈 없어 못 한다는 지자체의 핑계를 예견하고 “필요한 돈을 줄 테니 배수로가 막히면 징계를 받아라”는 해결책을 구상한다. 못할 일이 아닌데도 실현되지 않는 한심한 상황을 가만두지 못한다. 대통령이 원하는 공직자의 ‘송곳 역할’이다.
송곳이 대통령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 국무회의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자 의무를 어겼을 때의 제재 규정을 아는 사람이 없자 이렇게 얘기했다. “이게 우리의 문제다. 이 많은 사람이 있는데 그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저도 문제다.” 상대가 인식하지 못한 모순을 스스로 깨닫도록 계속 질문하고 자신도 함께 답을 찾는다. 부하 입장에선 모골이 송연해지는 ‘이재명식 대화법’이다. 함께 일했던 이들이 그를 ‘무서운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이런 만기친람형 대화법은 주로 공무원 사회를 향해 있지만, 정치권이라고 이 대통령의 인재상이 달라질 리 없다. 지난 8일 열린 여야 지도부 회동도 이재명식 해법에 따라 차근차근 순서를 밟아간 자리였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 원하는 협치를 하려면 야당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합리적 판단에 따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악수를 유도했다. 맞잡은 손을 송곳 삼아 갈등의 교착상태를 돌파하려는 것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송곳은 금세 머쓱해졌다. 정 대표는 악수 하루 만에 국민의힘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 정당 해산 심판의 대상이 될지도 모릅니다. 명심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진정 어린 사과를 요구한 것까지는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제1 야당 전체를 굳이 내란 세력으로 묶은 건 협치 의지와 거리가 있었다. “더 많이 가졌으니, 좀 더 많이 내어 달라”고 한 이 대통령의 해법과도 배치됐다. 이 대통령은 한계를 돌파하는 송곳 역할을 기대했지만, 정 대표는 새로운 포인트를 찾기는커녕 이미 나 있는 구멍만 후벼 팠다.
‘송곳 인재’의 자질은 오히려 민주당의 반골들이 보여주고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유튜브 권력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의 누구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김어준 유튜브의 팬덤 정치 현상에 송곳을 들이밀었다. 많은 민주당 구성원이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말이다. 곽 의원은 “스스로 신격화를 시도하고 종교적 권위에 근접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박희승 민주당 의원은 내란특별재판부 설치를 공개 비판했다. 박 의원은 “국회가 나서 직접 법원을 공격하고 법안을 고친다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삼권분립 정신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해 총칼을 들고 들어온 것과 똑같다”고 했다가 계엄 비유는 사과했다.
이들은 내 편이 신처럼 추앙하는 권력자에게 ‘노(NO)’라 말하고, ‘극혐’하는 상대편의 죄악도 반면교사로 삼았다. ‘원팀의 함정’에 빠진 근래의 민주당에선 상상할 수 없는 과감한 변화다. 그런 송곳들이 삐져나와야 이 대통령이 꿈꾸는 ‘실용으로 성장하는 나라’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