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 개혁 vs 속도 조절 시각차, 붕당 결성 두고 갈라서

2025-12-29

선한 선비 율곡과 동고는 왜 서로 원수가 됐나

임진강 하류에 파주 율곡리가 있다. 이이(李珥·1536~1584)는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났어도 여기에서 성장해 호를 율곡(栗谷)이라 했다. 율곡리에는 화석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임진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경관이 뛰어나다.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 가면서 날이 어두워지자 여기에 불을 질러서 그 불빛을 이용해 임진강을 건넜다는 일화가 있다. 율곡이 이런 전란을 예상하고 정자의 나무에 기름을 많이 발라서 빗속에서도 잘 탔다고 하는데 ‘율곡 신화 만들기’의 일환이란 생각이 든다.

율곡의 파주 모임, 파벌 의심스럽자

“붕당은 환란 부를 것” 동고 비판

동고의 병풍 역할에 성장한 율곡

틈만 나면 혁신 외쳤으나 성과 미진

동고 별세 직후 사림 분열 거듭돼

결국 조선 망국, 동고의 경고 현실화

율곡은 퇴계와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다. 그런 그도 당대 존경받던 동고(東皐) 이준경(李浚慶·1499~1572)과 원수지간이었으니 ‘선한’ 선비들이 어째서 이런 험한 관계가 되었는지 의아하다. 동고는 광주 이씨 명문가 출신으로 4대조 이인손은 세조 때 우의정을, 3대조 이극배는 성종 때 영의정을 지냈다. 또 3대조 이극균은 좌의정 시절 연산군에게 바른말을 해 자진 명령을 받고 죽었다. 조부 이세좌는 좌승지 시절 연산군 어머니 폐비 윤씨에게 사약을 가져다준 일로 갑자사화 때 네 아들과 함께 처형돼 동고 아버지도 이때 죽었다. 이에 집안이 몰락해 6살 때 형 윤경과 괴산으로 피신해 생명만 부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산군이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자 동고는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올랐고, 얼마 안 돼 조정의 주목받는 관료로 성장했다. 그리고 조광조를 비롯해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사림을 옹호하다가 권신 김안로 일파의 탄핵을 받고 파직됐다. 명종 대는 척신 윤형원의 주도로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이언적과 함께 양심적인 선비들을 보호하려고 애쓰고, 또 윤형원의 누이 문정왕후가 죽자 윤형원 일파를 조정에서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그래서 신진 선비들 사이에서 우러름의 대상이었는데 이황과 이기(理氣) 논쟁으로 유명한 기대승도 동고가 우의정이 되자 조선 선비의 표준이라고 칭송했다.

승진 명단의 아들 이름 뺀 동고

동고는 강직하고 청렴해 부인이 마련한 집에서 평생 살면서 방 한 칸 늘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집은 물건을 쌓아둔 창고처럼 보여 친구들이 동고(東皐·동쪽 언덕)라 부르지 않고 동고(東庫·동쪽 창고)라 불렀다. 영의정일 때는 승진 명단에 아들 이름이 있자 이를 뺄 만큼 스스로에 엄격해 정적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또 성격이 깐깐해도 유머 감각이 남달라서 다른 사람과 척지지 않으며 경륜을 편 유능한 선비였다.

동고가 죽고 200년이 지났어도 정조는 “마음 씀이 넓고 공평하며 나라의 안위를 한 몸으로 맡았어도 목소리와 얼굴빛을 드러내지 않고 국세(國勢)를 태산과 반석 같은 평안함에 두었다”라고 그를 칭송한 바 있다. 그가 황희·류성룡·이원익·채제공과 같은 반열의 영의정으로 평가받는 건 이 때문이다. 참고로 영의정 시절 이순신을 잘 봐 보성군수 방진에게 딸을 결혼시킬 것을 권유해 이를 실현했다.

그렇지만 동고를 가장 높이 평가해야 할 대목은 그가 연산군-중종-명종 대에 걸친 사대사화(무오·갑자·기묘·을사) 모두에 직간접적인 화를 입었음에도 서경덕·이황·조식·성혼처럼 은거하면서 절개를 지키기보다 출사해서 지조를 잃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은둔 사림으로부터 현실 참여에 따른 미움과 조롱을 받았어도 동고가 조정을 지켰기에 훈구파가 득실거려도 신진 사림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율곡은 이런 동고를 가리켜서 “사람이 죽을 때는 착하다는데 죽음에 이르러서 한 말이 사악하다”라며 악담을 퍼부었다. 이는 『논어』 ‘태백’의 ‘새가 죽을 때는 울음소리가 슬퍼도 사람이 죽을 때는 말하는 게 착하다’를 인용한 내용이다. 율곡이 동고를 이처럼 비난한 건 동고가 죽기 직전 선조에게 올린 유차(遺箚·마지막 상소문) 중에 “벼슬아치들이 이런저런 명목으로 붕당을 형성하는데 이는 심각한 문제로 반드시 나라의 고치기 어려운 환란이 될 거다”라는 내용 때문이다.

“도량 없다” 율곡의 동고 비난

당시 율곡은 경기도 파주를 중심으로 성혼·심의겸·송익필·정철 등과 자주 어울려서 동고의 눈에는 이 모임이 붕당처럼 보였다. 선비의 붕당 결성은 조선에서 예비 반역 음모쯤으로 여겨져 율곡은 이 모임의 붕당적 성격을 부인해야 했다. 그런데도 사림이 만든 ‘군자당’이므로 별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였다. 또 훈구파가 조정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사림이 만든 붕당을 문제 삼으면 이를 적전 분열로 봐 붕당 결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동고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몰았다. 심지어 그의 『석담일기』에선 ‘왕을 도로 인도하지 못하고 자기만 잘난 체하면서 상대를 받아들일 도량이 없다’라는 악평을 남겼다.

율곡이 어째서 이렇게 반응했을까? 혹시 조선에 일대 개혁이 필요하다고 봐 붕당을 형성해서라도 이를 주도적으로 추진할 세력이 필요하다고 보아서일까? 율곡은 한 나라를 창업기·수성기·경장기로 나누어보는 역사 인식을 했는데 당시를 혁신이 필요한 경장기로 파악해 틈만 나면 경장론을 주장했다. 그런데 그의 경장론은 사대부조차 군역 의무와 세금 납부를 해야 하는 등의 계급적 양보를 전제로 하는 거라 당시로선 실현되기 어려웠다. 그러니 율곡은 조광조처럼 ‘뜨거운 의지’만 믿고 처한 ‘냉엄한 현실’을 외면한 셈이다.

동고는 율곡과 달리 생각이 유연해서 개혁 속도를 조절하려고 애썼다. 이는 그가 겪은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도 처음에는 조광조를 자신의 역할 모델로 삼았는데 그가 급진적인 개혁을 펴다가 기묘사화로 희생되자 교훈을 얻었다. 그건 급진적이면 실패하기 쉽고 오히려 반대파를 뭉치게 하는 부작용만 낳는다는 교훈이다. 그래서 정치는 시세를 아는 게 중요하고 일을 추진하려면 관념을 넘어 실질이 뒷받침돼야 함을 알았다. 또 병조판서를 세 번 역임한 입장에서 안타까워한 건 수군을 줄이고 육군을 늘이는 당시 조정의 정책이었다. 이것이 국방상의 위기를 초래할 거로 예견했는데 이는 임진왜란으로 입증되었다.

동고가 죽고 얼마 되지 않아 누가 봐도 사림의 분당이 동인과 서인으로 분명해졌다. 그러니 동고의 예언이 맞고 율곡의 판단이 틀린 셈이다. 이에 율곡은 그의 잘못된 판단을 부끄러워해선지 1575년 ‘을해당론’을 시작으로 해 동서 간의 갈등을 줄이려고 애썼다. 그 결과 불안하긴 해도 얼마간의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결국에는 파탄을 맞았다. 이렇게 된 데는 동인 김효원과 서인 심의겸의 동시 탄핵을 두고 율곡이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한 게 큰 이유인데, 초년 관료 시절 옳다고 여겨 내뱉은 말과 행동이 오히려 붕당이 생겨나는 상황을 초래해 서인의 영수로 취급받은 게 그 배경으로 작용했다.

나라 망친 정치

그러지 않아도 율곡은 대간(臺諫) 시절 조정 대신들을 원칙론으로 몰아붙여 자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동고도 이런 비판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동고로선 억울한 점이 많다. 사화로 인해 사림이 어려웠던 시절 동고는 이들의 병풍 역할을 해주었기에 조정에 갓 등장한 율곡 같은 사림도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로 사림파는 선조 대에 들어서 훈구파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안동김씨가 세도를 부릴 때까지 약 200년간 사림을 중심으로 정치가 펼쳐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사림이 주도한 정치는 자체 분열로 인해 기대에 못 미쳤다. 처음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분열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분열했다. 또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노론은 시파와 벽파로 분열했다. 결국에 노론이 조정을 장악했어도 이들 노론에 의해 조선이 망국의 길로 들어섰으니 사림이 만든 붕당이라도 소인이 만든 붕당과 하등 다르지가 않다. 『논어』 ‘위령공’에 “군자는 단아하고 장중해서 다투지 않고 무리를 지어도 서로 도와서 잘못을 숨긴다”라고 하는데 군자를 자처한 사림들이 붕당을 결성해 조선의 정치를 망쳐났으니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정탁 노장사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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