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와 제국의 욕망

2025-05-13

지난 주말 중국과 미국이 상호관세 장벽을 낮추기로 합의하면서 중·미 관세전쟁의 향방에 다시 이목이 쏠린다. 무역 금지령이나 다름없던 양국 간 엄포용 관세율은 유동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향후 트럼프 1기 수준을 기준으로 조정될 수 있어 보인다. 트럼프 2기의 급발진이 중국산 제품에 의존해온 미국 소기업들에 타격을 입히면서 민생고에 발목이 잡힌 셈이다. 그간 소비시장과 안보우산을 제공했으니 고율 관세로 값을 치르라던 동맹국들에 대한 협박도 개별 협상이 진행되면서 나라마다 양상에 차이가 있다. 그러나 중·미 간에 공급사슬이 분리되는 시나리오보다는 첨단 분야의 전략적 경쟁과 기타 분야의 협업 공존이라는 낙관적 시나리오 쪽으로 기울어온 기존 인식의 재검토 필요성은 남아 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궁극적인 목표가 인공지능 등 기술 패권에 기초한 제조업 부활이라고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위대한 미국’으로 찬양하는, 남북전쟁 전후부터 1913년 연방 소득세 도입 이전까지의 시기도 고율 관세로 보호무역을 추진하면서 제조업 육성에 열 올리던 시절이긴 했다. 부자들이 누진 소득세를 부담하지 않았기에 관세에 대한 의존이 컸던 당시 미국 제조업 성공의 원인은, 하나는 산업정책의 유치산업 보호 효과였고 다른 하나는 사회 기반시설과 공공서비스의 확충을 통해 노동자 가구의 생계비를 낮추고 기업의 원가 부담을 줄인 데에 있었다.

기실 미국 자본주의가 지난 수십년간 제조업 이탈을 겪은 원인 역시 주택·교육·보건·연금·교통·통신 등 공적인 공급이 가능한 서비스의 민영화로 금융자본의 지대 추출 기회가 늘면서 경제 내 고비용 구조가 고착된 데에서 찾아야 옳다. 그러니 트럼프처럼 관세폭탄 날리고 부자감세에 진심이어서는 제조업 부활이 잘될 리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에는 오직 제국주의 미국만 시도할 만한 방법으로, 한마디로 다른 나라의 생산 능력을 가져오는 것이다. 미국 바깥의 제조업체들은 관세를 부담하면서 자국 생산을 할 게 아니라 미국 내로 생산 단위를 옮겨오라는 상무장관 하워드 러트닉의 거듭되는 촉구에서 확인되듯 지금 미국은 세계 제조업 역량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 시대 일극 패권국가인 미국은 영국과는 달리 완성된 제국을 가져본 적이 없다. 경쟁국의 저변이 확대됐고 식민지의 직접 관리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던 탓이다. 더욱이 산업 경쟁력 문제가 장기화하자 미국으로서는 대외 적자와 국가채무의 누적에 따른 패권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전략 변경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그 변경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을 약화시키고 안보와 고율 관세를 미끼로 종속국과 도전자 나라들의 생산 및 고용 기반을 앗아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미국이 완성된 제국으로 도약하려는 그 헛된 욕망의 과정은 또한 제국주의의 내적 모순이 다른 나라 민중들의 삶 속으로 고스란히 전가되는 고통의 과정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구체제 내란 세력에게 그런 미국은 연명 수단 이상이다. 트럼프가 ‘원스톱 쇼핑’ 장바구니에 정확히 뭘 담았는지, 이달 15~16일 한·미 정부 간 2차 통상협상을 거치면 어떻게 달라질지, 내막을 알 길 없는 조급한 밀실 협상 과정에서 내란 정부가 관세, 주한미군 주둔비, 농산물 추가 개방 등 첨예한 사안들을 어떻게 다룰지, 한숨부터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행여 뒤질세라 한·미 동맹 결의부터 서두르며 미국의 인정에 목이 타는 제1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들 사정이 다를까. 미국이 전략적 파트너로 간택해주기를 고대하며 미국 측 조건을 상당 폭 수용하고 상호관세에서 다소 양보를 받는 정도의 절충에 스스로 갇히지는 않을까. 품목별 관세에 직간접적으로 노출되는 연관 산업에 대한 대책은 충분할까. 이제 다자주의는 끝났으니 결국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가자면서 혹시 한·중·일 FTA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을 재추진하고 한·미 FTA를 미국 입맛에 맞게 재협상하려 들지 않을까. 석수역의 전봉준 트랙터를 적시던 농민들의 눈물 같은 비는 어느 세상이 돼야 마를 수 있을까.

우리는 세계 경제의 다극화라는 긴 흐름 속에서 진정으로 ‘탈미국’을 이야기해야 할 때가 됐다. 제국의 일방적인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국민국가의 정책 자율성을 지켜내면서 국제 협력의 범위와 영역, 수출입망을 글로벌 사우스를 포함한 새로운 차원으로 확대하고 다변화할 때가 됐다. 그와 같은 대외정책 방향을 진보 정치의 현실적인 대안으로 발전시키고 구체적인 내용을 채워갈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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