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피 2025] 로봇착유 척척, 디지털 혁신 ‘가속’…소비자 입맛·날씨 맞춰 작물 다변화 ‘박차’

2024-12-30

로봇이 착유·유성분 분석 ‘척척’…디지털 혁신 가속

정밀농업, 인력 절감·생산량↑

환경친화 순환식 수경재배 등

‘AI 탑재’ 스마트팜도 발전 거듭

하반기엔 ‘농림위성’ 발사 예정

기후변화 감시·재난 대응 강화

전북 진안군 진안읍 물곡리에 있는 ‘돌담목장’에는 일반적인 낙농장에서 보기 힘든 설비가 있다. 바로 로봇착유기다.

운동장에서 휴식을 취하던 젖소가 사료를 먹기 위해 구유(먹이통)가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려면 동선상 반드시 이곳 착유실을 거쳐야 한다. 젖소가 착유실로 들어오면 센서가 자동으로 개체를 인식해 젖을 짜야 할 개체면을 자동으로 고정한 뒤 로봇 팔이 3차원(3D) 카메라로 젖을 찾아서 착유컵을 부착한다. 이렇게 자동으로 착유한 우유는 저장탱크에 바로 수집되며 유지방·유단백 등 유성분도 실시간으로 분석된다. 착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는 로봇이 알아서 분류해 구유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도록 출입구가 열린다.

보통 50여마리의 젖을 짜는 데 최소 2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다. 그나마도 오전과 오후 1번씩 짜는데도 하루가 빠듯한 실정이다. 하지만 로봇착유기가 도입되면서 24시간 자동으로 착유가 가능해져 농장주 한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농장 운영이 가능하게 됐다.

지난해 12월16일 현장에서 만난 농장주 류민기씨(38)는 “로봇착유기가 도입되면서 인력 부담이 크게 줄었다”면서 “하루 중 언제든지 착유가 가능해지면서 착유량도 1마리당 2∼5㎏ 늘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인력 부족 문제나 기후변화에 따른 이상기상 현상 등 농촌 현안을 해결할 방안으로 ‘첨단 기술’이 대두되고 있다.

관행농업의 모든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해 생산성을 높이고 자원을 최적으로 활용하는 차세대 솔루션인 정밀농업도 이러한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좋은 사례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30년까지 전체 농가의 10%에 정밀농업을 보급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들녘경영체중앙연합회와 대동이 2024년부터 공동 추진한 정밀농업 실증화 사업에서 성과가 확인됐다.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트랙터를 활용해 토양정보 수집부터 시비·방제, 수확까지 실증해본 결과 비료량은 평균 7% 감소하고 수확량은 6.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스마트팜은 더욱 스마트화하고 있다. 기존 하드웨어 중심의 1세대 스마트팜에서 정보통신기술(ICT)과 인공지능(AI)을 탑재한 소프트웨어 중심의 2세대 스마트팜으로 전환하기 위한 연구도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2세대 스마트팜 기술인 순환식 수경재배를 적용하면 비순환식 수경재배 대비 한해 농업용수는 10∼30%, 화학비료는 20∼40%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비료 절감으로 비순환식 재배보다 탄소 배출량을 토마토 63%, 파프리카 61%, 딸기 26%씩 경감할 수 있다는 게 농진청의 설명이다. 올해부터 전국 14곳에서 관련 시범사업이 추진된다.

올해 하반기엔 농림위성(차세대중형위성4호) 발사도 예정돼 있다. 농림위성은 관측 폭 120㎞, 해상도 5m로 지구 표면을 관측해 전국을 3일이면 촬영할 수 있다. 짧은 주기로 연속적인 영상 정보를 생산해 식생·농업환경 변화를 주기적으로 관측하기에 최적화된 위성이다.

농림위성을 활용하면 전 국토의 농·산림 상황에 대한 준실시간 정보 확보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표본·육안 조사 중심으로 이뤄지던 주요 농작물 관측이 객관적·주기적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돼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농경지 토양과 농업용 물 자원 현황, 가뭄·홍수·산불·병해충 등 재난 상황, 국외 주요 작황과 산림자원 정보 등을 적시에 확보해 정책 대응력이 강화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주요 재배지 변동과 생태 변화 등 기후변화 감시와 대응에 대한 과학적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진안=박하늘 기자 sky@nongmin.com

소비자 입맛·날씨 맞춰 작물 다변화 ‘박차’

전남 광역브랜드 ‘오매향’ 등

전국 아열대작물 농가 늘어

여름철 고온 환경 재배 유리

병해충 강한 신품종 개발도

“소비자 입맛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날씨는 종잡을 수 없습니다. 바뀌느냐, 굴복하느냐. 한국 농업은 기로에 서 있습니다.”

농산물 생산 여건이 급변했다. 특정 지역·시기에서만 해당 농산물이 생산된다는 고정관념은 깨진 지 오래다. 기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지만 폭우·폭염·폭설 등 초극단적 기상의 출현 빈도 또한 급증했다.

상황이 이렇고 환경이 저렇다고 한국 농민이 포기할쏘냐. 5000년 혈통 속 도도히 흐르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름의 유전자(DNA)는 ‘다양성’으로 무장한 갑옷을 입고 오늘도 전쟁터를 누빈다.

다양성의 한 예는 아열대작물 재배에서 찾을 수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3년 전국 아열대작물 재배농가는 7338곳, 면적은 4126㏊로 집계됐다. 2018년 1644곳, 314㏊에 견줘 4.5배, 13배 늘었다.

경기 포천에서 열대과일 파파야를 재배하는 오경훈 선우팜 대표(61)는 “겨울철 시설하우스 가온 비용이 부담되긴 하지만 강추위에 시설 내부 온도 1℃ 높이는 것보다 무더위에 1℃ 낮추는 비용이 10배가량 더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진다면 아열대작물 재배농가엔 오히려 기회가 찾아온 셈”이라고 역설했다.

한반도 최남단 전남지역은 어떤가. 전국 아열대작물 재배면적의 59.4%(2452㏊)가 전남에 분포해 있다. 전남농협은 아열대과일 판로 확보를 위해 광역브랜드 ‘오매향’을 2020년 출시했다. 전남도는 2021∼2023년 아열대과수 육성사업과 신소득 원예특화단지 생산·유통 시설 구축에 모두 224억원을 투입했다.

농협경제지주 관계자는 “전남 장성에선 2022년 신소득 원예특화단지 사업 대상 품목으로 ‘레몬’을 선정해 올해 첫 수확을 한 이후 계통출하에 나섰다”며 “2025년에는 2024년(2t)보다 5배 많은 10t을 출하할 예정이고 레몬 외에도 백향과(패션프루트)·용과 등 다양한 열대과일 판매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기후변화에 강한 신품종 수요도 늘어났다. ‘2024년 대표 과일’을 생산한 사과농가 서상욱 태산농원 대표(61·경북 포항)는 “기후가 변하면서 빨간 사과는 착색이 잘 되지 않아 노란색 사과인 ‘시나노골드’를 재배했는데 의외로 소비자 반응이 좋았다”며 “‘골든볼’ 등 희귀 신품종에 ‘이지플’ 등 인지도가 높은 품종을 접붙여가면서 품종을 개량해나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도 힘을 보탰다. 농진청은 다양한 작물의 신품종 출원·등록을 꾸준히 확대했다. 농진청 관계자는 “병해충에 강하고 저온·고온에도 잘 자라는 신품종을 신속하게 보급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2023년 품종보호권 처분을 통한 신품종 보급 건수는 407건으로 전년(268건)에 비해 50% 이상 급증했다.

지방자치단체도 한몫 거든다. 충북 진천군은 2021년부터 읍·면별 특색 있는 미니수박 단지를 24㏊ 규모로 조성했다. ‘까망애플수박’을 재배하는 김건중 미니수박공동출하회장(49·진천)은 “일반 수박을 재배하다가 1인가구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4년 전 미니수박을 재배하기 시작했다”며 “초기엔 재배기술이 확립되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지금은 대형마트와 전량 계약재배를 하는 등 판로를 확대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조영창 기자 changsea@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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