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같은 날씨에 생화 꽂으면 한시간도 못 가서 다 시들어요. 대부분 플라스틱 조화입니다.”
경남 창원에서 올해로 35년째 국화를 재배하고 있는 화훼농가 정태식씨(66)의 말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친야·친여 진영간 화환 대결에 불이 붙었다. 여야 당사와 국회의원 사무실 앞에 화환이 장사진을 이루면서 화훼업계가 반짝 특수를 맞았다는 보도도 잇따랐다. 그러나 정작 화훼농가들은 설 자리를 점점 잃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화환에 쓰이는 꽃이 대부분 플라스틱 조화나 외국산 생화인 까닭이다.
최근 화환으로 찬성·반대 등 의견을 표시하는 ‘화환 시위’가 새로운 시위 문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화훼농가에 긍정적인 영향은 거의 없다는 게 산지의 얘기다. 정씨는 “겨울에 야외에 세워둘 화환에는 생화를 사용할 수가 없다”며 “한시간도 못 가서 얼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수를 본 이들이 있다면 플라스틱 조화를 수입하는 업자나 화환대를 조립하는 공장 정도일 것”이라며 씁쓸해했다.
실제로 국화 시세는 내림세를 이어왔다. 1∼18일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공판장에서 거래된 국화의 평균가격은 한단당 3896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932원)보다 0.9% 내렸다. 최근 3개년 평균(3950원)과 비교해선 1.4% 떨어졌다. 박주상 aT 화훼공판장 경매실장은 “연말엔 시상식이나 송년회, 각종 기업 행사가 많아 꽃다발과 화환 소비가 반짝 늘곤 하는데 올해는 경기 침체 때문인지 늦가을 이후 행사가 축소·취소됐고 정치권 사태가 겹치면서 꽃 소비가 더욱 둔화했다”고 말했다.
aT에 따르면 11월 자체 화훼공판장에서 거래된 절화 경매금액은 79억2600만원으로 전년 동기(83억1900만원) 대비 4.7% 감소했다.
화환 시위 문화가 장기적으로 국화 소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신봉준 부경원예농협 팀장은 “국화는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한 수단인데 최근 정치적 도구로 변질되면서 오히려 국화가 지닌 ‘근조’ 의미가 퇴색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잖아도 경남지역 국화농가는 이미 소멸 중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화환 시위 문화가) 걱정스럽다”고 덧붙였다.
부산·경남 등은 전국 국화 유통량의 60%를 취급하는 국화 주산지다. 신 팀장에 따르면 부경원협에 국화를 출하하는 농가수는 지난해 50곳에서 올해 38곳으로 줄었다. 상당수가 다른 작목으로 전환했다.
서효상 기자 hsseo@nong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