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권의 한 대형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A교수는 지난주 인근 병원에서 숨진 뇌사자의 심장을 이송받아 심부전(심장 기능 저하) 환자 B씨에게 이식했다. B씨는 이식 대기 중이긴 했지만,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아 전국적으로 봤을 때 이식 순번이 한참 뒤였다.
그런데도 그가 심장을 먼저 받게 된 건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KONOS)의 전산망이 마비되면서다. 원래는 장기이식을 오래 기다린, 이식이 시급한 사람에게 장기가 먼저 돌아가야하지만 장기조직혈액 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해 장기이식 대기자 순번을 확인할 수 없게 됐다.
화재 이후로는 뇌사자가 발생하면 해당 병원 내에서 수혜자를 고르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인근 병원에 연락해 수혜자를 찾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A교수는 "원래라면 더 오랜 기간 기다려야 했을 환자였지만, 우리 병원이 뇌사자 발생 병원과 가깝다는 이유로 이식 기회를 먼저 얻었다. 이 정도면 시스템 붕괴 수준"이라고 말했다.
장기이식 시스템 20일째 마비…애타는 환자·가족
의료계에 따르면, KONOS 전산망이 20일째 멈춰 서면서 국민 생명과 직결된 장기이식 현장이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시스템 먹통으로 대기자의 응급도·권역·혈액형·나이 등을 종합해 전국 단위로 이식 우선순위를 결정하던 기존 연결 방식이 중단됐다. 장기 기증을 기다리는 환자는 4만6416명(6월 기준)에 이른다.

보건복지부는 화재 발생 사흘 뒤인 지난달 29일 전국 의료기관에 '이식대상자 선정을 위한 협조 요청' 공문을 내려보냈다.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입수한 이 공문에는 간·심장·폐 등 주요 장기를 이식할 때 기존 고려 항목이었던 '대기 기간' 대신 '지리적 근접도'를 반영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기 이식은 시간이 중요한 만큼 뇌사자 발생 병원에서 우선 이식하고, 그게 어렵다면 인근 병원에서 수술을 진행하라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자원 화재 이후 이날까지 뇌사자는 13명 나왔고, 이로 인한 장기 기증은 49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에선 복구가 지연될 경우 환자 피해가 커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A교수는 "화재 전까지만 해도 전국 순위권에 있던 급한 환자가 뒤로 밀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또 다른 대형병원 이식혈관외과 C교수는 추석 연휴 중 이 병원서 발생한 뇌사자의 간을 간경화 환자에게 이식했다. 수혜자는 순번이 한참 뒤였지만 다니던 병원에서 뇌사자가 발생한 바람에 간을 받았다. C교수는 "더 시급한 환자에게 장기가 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며 "정말 위중한 환자들이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사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울 '빅5' 병원의 D교수(이식외과)는 "거리에 따라 우선순위가 갈려 매우 불공정한 상황"이라며 "지금은 운에 따라 이식이 결정되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장기 이식 평균 대기 기간은 신장 2888일, 간 204일, 췌장 2604일, 심장 198일, 폐 202일(지난 6월 기준)에 달한다.
현재 장기조직혈액 통합관리시스템 데이터는 중요도가 낮은 3등급으로 분류돼 있다. 하지만 정부 기준상 '국민 안전·생명에 위험이 발생하는 경우'로 중요도가 높은 1등급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지아 의원은 "정부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장기조직혈액 통합관리시스템을 1등급으로 즉시 상향해 최우선 복구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라며 "다시는 멈추지 않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