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전윤종 산기평 원장 “AI·디지털 제조 혁신으로 산업기술 R&D 패러다임 전환해야”

2025-04-09

# 독보적인 기술이 곧 힘으로 작용하는 시대다. 세계 각국은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첨단 분야의 기술 패권을 쥐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미국 관세전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기술과 제조·생산 부문의 혁신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반도체·자동차·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핵심 먹거리 산업에서 후발주자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초격차 유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고도화해야 하는 부분이 제조 생산성 향상이다. 제조 현장의 AI 발전과 융합, 로봇의 활용화, 센서 기술의 고도화로 제조 AX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높아진 무역장벽을 더욱 강력한 기술과 빨라진 생산효율성으로 극복해야 한다.

전윤종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은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 대응해 우리나라 산업 R&D에 도전 문화를 고취하고 AI·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제조업 혁신으로 산업기술 R&D의 패러다임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KEIT에 부임한지도 2년이 넘었다. 기관 경영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는?

▲그동안 KEIT는 산업기술 발전 주도 기관으로, 미래 대응을 위해 기획, 평가, 성과 등 R&D 전주기 차원의 다양한 혁신을 추진해 왔다. 정부 R&D 혁신성을 높이는 동시에 현장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고군분투했다. 무엇보다 △R&D의 도전성 강화를 위한 전략·기획기능 확대, △미래 신산업 발굴 및 육성, △산업 현장과의 협력 및 소통 확대에 주력해왔다.

기술 패권 시대 KEIT는 우리 산업계에는 도전적인 R&D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혁신의 불씨를 부채질해 산업 혁신을 선도해야 했고, 이러한 목표 아래 KEIT는 '알키미스트 프로젝트' 및 '미래판기술 프로젝트' 등 혁신도전형 R&D를 과감히 확대했다. 그 결과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실제 R&D와 상용화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

신산업 발굴과 육성을 통해 불확실성의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에도 노력했다. 국가 3대 게임체인저 중 하나인 AI 반도체 분야에서 첨단 패키징 대형 예타 사업이 올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는 국내 반도체 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공급망 내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바이오, 휴머노이드, 미래 모빌리티 분야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양자 기술 산업화 추진을 위해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차세대 전략 산업 발굴을 위한 전담 T/F 팀이 출범하기도 했다.

지금 세계는 격동의 시기다. 이럴 때일수록 산업 현장과 R&D 정책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이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응하려면 기술력 강화와 자립 역량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슈퍼乙 기업' 육성과 같은 맞춤형 지원 체계로 기업-연구기관-정부의 유기적 협력을 강화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에서 대내외 환경을 예상한다면?

▲최근 국내외 경제 기구들이 세계 경제 성장에 대한 예측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1%대 경제 성장률이 예상되며, 지난해 전망치인 2%대보다 크게 밑도는 수치다. 녹록치 않을 환경이지만, 그래도 주요국 산업기술 정책 동향을 분석하고 전략적으로 대응한다면, 국내 산업의 고부가가치 전환과 질적 도약의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 사례만 보더라도, 미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으며, 중국은 갈륨, 게르마늄 등 희귀 광물 수출 통제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우리 기업들은 지속적인 리스크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내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산업 발전의 필수 과제임을 알 수 있다.

이에 KEIT는 소부장(소재·부품·장비) R&D 전담 기관으로서, 200대 핵심전략기술 및 183개 공급망 안정 품목에 대한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또한, 기술 자립도를 위해 고위험 차세대 기술과 미래 공급망을 선점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투자유망품목에 민관 투자 연계형 R&D를 2배 가까이 확대하고, 중장기적인 공급망 대응 전략을 마련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초격차 기술을 위해 KEIT가 추진해 온 사업 결실과 올해 계획은?

▲KEIT가 실시한 '2023년 산업기술수준조사'에 따르면 미래형 디스플레이는 우리나라가 최고기술 보유국으로 그 위상을 공고히 하고 있다. 이차전지·전기수소차·조선해양 등의 분야에서는 최고 기술국 대비 90% 이상의 기술 수준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차세대 항공·바이오헬스·소부장 영역에서는 선진국과 상당한 격차가 나타났다.

KEIT는 지난해 핵심전략산업에 전년 대비 78% 이상 확대된 R&D 예산을 투입하며 초격차 기술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2024년 기준 반도체 핵심 IP를 72건 대거 창출했다. 반도체 고급연구인력도 2032년까지 연간 200여명을 꾸준히 양성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자율주행 자동차 및 선박 등 전통 주력 제조업을 소프트웨어 중심의 스마트 모빌리티 산업으로 전환하는 고부가 혁신 기반도 마련했다.

올해는 반도체,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주력산업의 차세대 초격차를 위한 선제적 투자와 R&D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로봇·방산·IoT 등 4대 주력 분야의 미래 경쟁력을 위해 대형 온디바이스 반도체 예타사업을 본격 준비 중이다. 또한, 초소형부터 모빌리티용 중대형까지 다양한 차세대 이차전지 분야 핵심기술 R&D 지원도 지속할 예정이다. 디스플레이 역시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및 신격차 기술확보를 위한 신규 과제를 올해부터 지원한다.

-제조 산업에서의 AI 대전환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는가?

▲지난 2024년은 산업 전반에 걸쳐 AI와 디지털 혁신이 가속화된 해였다. 특히, AI 거대 언어 모델(LLM)의 고도화와 함께 생성형 AI가 다양한 산업 분야로 퍼지면서 우리 일상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산업용 로봇과 센서 기술이 급격히 발전, 제조업에서는 AI를 활용한 패러다임 전환을 모색 중이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주요국을 살펴보면 독일은 제조업 AI공정 활용률이 70%에 육박하며, 뒤이어 유럽, 프랑스 등이 약 50% 내외 수준으로 나타났다. 반면 우리나라는 20%대에 머물러 자율화 수준이 다소 미숙한 상황이다. 국내 주력산업의 자율화·디지털화가 시급하며 글로벌 기술 우위 선점을 위한 정책의 적시 대응 역시 중요하다.

개별 기업으로 테슬라가 OTA(Over-the-Air) 방식을 차량용 통합OS 운용에 도입했고, 아마존은 물류로봇 연계 시스템과 휴머노이드 로봇까지 현장에 투입시키고 있다. 세게 곳곳에서 AI를 활용한 빅데이터 기반 신기술 융합이 신산업을 창출하고 있다.

KEIT도 현대자동차, 포스코, 대한항공 등 153개 업종별 대표기업 및 유망 중소·중견기업과 함께 생산인구 감소, 생산성 정체, 탄소배출 감축 등 제조업 당면 과제를 해결하고자 AI 자율제조를 위한 선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본 프로젝트는 민·관의 투자 규모가 총 3.7조 원에 달하며 이 중 정부는 19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핵심 제조 공통기술을 해결해 주력 산업의 대전환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AI 기반의 R&D 시스템 전환 역시 KEIT의 주요 과제다. AI를 활용한 연구 기획·평가·성과관리 시스템을 구축, 보다 효율적인 연구개발 환경을 조성할 계획이다. 현재 AI를 활용한 기획·평가 시스템 고도화로 국내외 시장 및 기술·특허 동향을 자동 생성하는 업무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다. 올해 신규 과제의 20% 이상을 AI 직접 개발 혹은 활용 과제로 추진하는 등 산업기술 R&D 전반의 AI 확산에 앞장서겠다.

-바이오헬스혁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 바이오 분야 KEIT의 노력은?

▲바이오는 국가 안보와 국민 건강을 지키는 핵심 산업으로, 게임체인저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2위의 바이오의약품 제조역량을 보유하고 있으나, 제조생태계 전반의 경쟁력은 아직 미흡하다. 따라서 민·관 협력의 견고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동시에 글로벌 초격차 기술 선점을 위한 적극적인 R&D 투자가 필요하다.

KEIT는 올해부터 국가첨단전략산업 바이오 특화단지 연계 R&D 사업을 추진하여 바이오의약품 생산 허브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바이오헬스 기술 수요 발굴-R&D-실증 테스트까지 기술개발의 전주기에 걸쳐 공급기업과 수요기업 간 연대 협력 강화를 지원함으로써 협력형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바이오와 첨단 기술과의 융합도 최근 지원을 확대하는 분야다. 이미 국내최초 DTx(디지털치료기기) 품목허가(2023년) 및 세계최초 DTx 플랫폼 처방(2024년)을 시작하는 등 관련 분야를 선도하고 있다. 더불어, AI기반 바이오의약품과 소재의 제조혁신 등 바이오 R&D AX를 위해 올해부터 바이오헬스 신규예산의 50% 이상을 AI R&D 과제로 지원하고 있다.

-앞으로 기관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향후 10년은 산업기술 연구개발(R&D)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화하는 시기로, KEIT는 산업 혁신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본다.

'미래 전략 기획' 기능을 한층 강화하여,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 환경에서도 초격차 혁신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기존에는 시장의 요구를 반영한 연구개발이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한발 앞서 산업의 변화를 예측하고, 국가 기술 전략을 선제적으로 기획하는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를 위해 데이터 모델링, 미래 시나리오 분석 등 미래 경제·사회 변화에 대응할 핵심 기술을 도출하는 체계적인 기획 역량을 갖춰 나가겠다. 반도체·이차전지·디스플레이 등 기존 주력 산업 분야에 더해 바이오, AI자율제조 등 유망 산업의 개발 전략 수립을 지원하겠다.

R&D 사업화 지원도 더욱 강화할 것이다. 기술 개발 초기 단계부터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상용화 촉진을 위한 R&D 정책 및 지원 프로그램을 정비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R&D-사업화 연계 투자를 확대하고, 기술혁신 제품의 판로 개척과 사업화 컨설팅 지원 등을 통해 R&D 성과의 신속한 시장 안착을 유도할 것이다.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 지방소멸, 기후변화, 기술안보 위협 등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문제는 매우 복잡 다단하다. KEIT는 지속가능한 혁신과 그에 따른 성장을 위해 첨단기술 인재를 육성하는 등 산업 전반의 혁신을 확산시켜 나갈 것이다. 단순한 연구개발 지원을 넘어 산업 기술 혁신의 네비게이터(Navigator) 역할을 수행하며, 한국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혁신을 이끌어 나가도록 하겠다.

[전윤종 원장은]

산업기술과 통상 분야의 풍부한 경륜과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리즈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36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입문한 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협력국장과 통상교섭실장을 역임했다. KAIST 과학기술정책센터에서 연구교수로 활동했고, 현재는 바이오헬스 혁신위원회 민간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산업기술 R&D 전문기관인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 원장으로서 3년째 재직 중이며, 폭넓은 정책 식견을 바탕으로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과 전자신문 독자위원으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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