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으로 벽지도 골라주시면 안되나요?”
고객이 이렇게 묻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언뜻 엉뚱하게 들릴 수 있지만, 더 이상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기술이 우리의 일상 깊숙이 들어오면서 이제는 감각과 취향의 영역까지 기술이 제안해주는 시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정보를 찾아주거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수준을 넘어서, '이 사람에게 어울리는 색은 무엇일까' '이런 라이프스타일에는 어떤 공간 구조가 적합할까'와 같은 질문에도 기술이 답하기 시작했다.
아파트멘터리는 고객의 취향과 감성을 더 깊게 반영하기 위해 10년간 축적된 경험 데이터와 더불어 최근에는 AI 기술의 활용도 접목시키고 있다. 공간을 설계하는 것은 결국 고객의 삶을 읽어내고 투영하는 과정을 내포한다.
지금까지는 그 해석이 디자이너 개인의 직관과 경험에 많이 의존해왔다면, 이제는 축적된 데이터와 기술을 바탕으로 그 판단의 정확도와 일관성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방대한 양의 정성적 데이터를 정형화하는 기술들이 활용되면서, 수만 건의 고객 선택 데이터를 분석해 취향 유형을 분류할 수 있고,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설문과 상담 정보 등을 통해 고객에게 맞는 공간 스타일을 더 적절하게 찾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고객 한 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한 명이 선택하는 벽지 색, 주방 구조, 수납 방식 등의 수 많은 선택들은 결국 고유한 라이프스타일의 표현이 된다. 이 데이터를 쌓고 분석하면, 새로운 고객을 만났을 때 어떤 제안이 적합할지를 이전보다 훨씬 정밀하게 제시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텍스트, 사진, 선택 이력 등 비정형 데이터들이 의미 있게 정제되고 사용되는데, 기존에는 할 수 없던 방식이다.
기술이 더 발전할 수록 그 끝점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더 강조된다. 취향을 담는 공간 서비스 영역에서 기술이 궁극적으로 가야 할 곳은 효율이 아니라 공감이며, 자동화가 아니라 이해다.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중심을 잡고 기술을 활용할 때, 우리는 기술을 통해 훨씬 더 인간적인 환경을 만들어낼 수 있다.
공간 디자인은 결국 사람의 심리와 취향과 일상을 담는다. 눈에 보이는 구조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이제 그 감정을 더 정밀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됐다. 특정 조명 아래서 집중이 잘 되는지, 어느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긴지, 어떤 동선에서 불편함을 느끼는지 등의 과정이 데이터로 남고, 다시 공간 설계에 반영된다.
'AI가 벽지를 고를 수 있다'는 말은 단지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이 누구를 위해, 어떤 기준으로 사용되느냐는 것이다. 사람을 향하지 않는 기술은 쉽게 목적을 잃는다. 반면 사람을 이해하고 돕기 위한 기술은 그 자체로 하나의 따뜻한 경험이 된다. 그리고 집의 공간이라는 가장 사적인 환경 안에서 그 경험은 더욱 깊이 자리잡게 된다.
우리는 지금, 기술을 통해 얼마나 더 빠르게 작업할 수 있느냐보다, 얼마나 더 사람다운 공간을 만들 수 있느냐를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기술은 이제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그 감정을 더욱 섬세하게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열어주고 있다. 이 가능성을 사람 중심으로 풀어나간다면, 기술은 삶의 품격을 높이는 동반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내딛을 수 있는 순간이다.
김준영 아파트멘터리 공동대표 ask@apartmenta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