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강정, 속은 비어도 겉은 바삭·달콤…입에 붙는 자별한 맛

2025-04-28

“즙은 꿀을 많이 넣어 매우 졸여 강즙·계피 넣어 하나씩 묻히지 말고 여럿을 즙에 담가 서로 엉기게 묻혀 가루에 묻었다가 떼면 즙이 많이 묻어 엉겨서 맛이 자별하니라.”

이 글은 빙허각 이씨(1759∼1824)가 쓴 ‘규합총서’에 나온다. 이 요리법은 “강정은 견병”으로 시작한다. 강정은 찹쌀가루를 반죽해 썰어서 말렸다가 기름에 튀긴 과자다. 완성된 모양이 누에고치와 닮아서 한자로 고치 ‘견(繭)’ 자를 붙여 ‘견병(繭餠)’이라고 불렀다.

사실 강정 만들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빙허각 이씨 역시 강정 요리법을 매우 자세하게 적어놓았다. 먼저 찹쌀을 곱게 가루 내어 꿀을 넣고 반죽하여 잘 익도록 충분히 찐 다음에 다시 꿀을 조금 넣고 공기 빠지는 소리가 나도록 개서 넓적하게 반대기를 만든다. 그런 다음에 반대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서 뜨거운 온돌방에 두고 하룻밤 말린 후, 청주에 담갔다가 꺼내서 다시 말린다.

빙허각 이씨는 이렇게 말린 반대기를 “뼈가 없”도록 술에 축이라고 적었다. 여기에서 ‘뼈’는 반대기 안쪽에 반죽 일부가 말라 뭉쳐서 마치 고기 안에 뼈가 들어 있는 것처럼 딱딱하게 잡히는 것을 가리킨다. 강정을 술에 축이는 이유는 반대기가 잘 부풀어 오르게 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반대기를 기름에 튀긴다. 빙허각 이씨는 강정 반대기를 튀길 때 사용하는 기름의 종류를 따로 밝히진 않았다. 빙허각 이씨 생존 시기 전후에 나온 요리책을 보면 참기름과 들기름을 두루 썼다. 아마 빙허각 이씨도 그랬을 것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강정·산자·빈사과 등을 통틀어 기름에 튀겨낸 과자라는 뜻으로 ‘유과(油果)’라고 불렀다. 완성된 유과는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 그뿐이랴. 만드는 중에도 고소한 기름 냄새가 온 집 안에 진동해 흡사 잔칫날 같았다. 그런데 성리학자들은 유과를 두고 적지 않은 논쟁을 펼쳤다.

조선의 주자(朱子)라고 불렸던 송시열은 “삼대(三代, 중국의 하·은·주 시대) 때에는 제사에 냄새를 금지했다”면서 유과를 제사에 쓰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일렀다. 송시열과 같은 노론 계열이었던 김원행은 “지금의 유과는 불가(佛家)의 음식이다. 제사에 쓰지 않는 것이 옳다”고 강경론을 펼쳤다. 이런 논쟁에도 불구하고 사대부가의 관혼상제 때 유과는 음식상의 으뜸 자리에 올랐다. 그 이유를 송시열의 고백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집은 매우 가난하여 (유과를 쓰는 것을) 늘 폐하고 싶어도 폐하는 것이 서운한 까닭에 선례에 의하여 그대로 쓰면서 역시 높게 고인다.”

이래서 많은 논쟁에도 불구하고 강정은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박지원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강정은 깨끗하고 예뻐서 먹음직스럽지만 속이 텅 비어 있어서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그뿐인가? 잘 부서지기까지 해서 ‘훅’ 하고 불면 눈처럼 날아가버린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것을 가리켜 ‘속 빈 강정’이라고 말한다.”

이즈음은 배가 부르면 안되는 시대다. 우리농산물로 만든 ‘속 빈 강정’이 다이어트 디저트로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의 으뜸 자리를 꽉 채울 날을 기대한다. 왜냐하면 빙허각 이씨의 평가처럼 강정의 맛은 자별(自別), 곧 본디부터 남다르고 특별하기 때문이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교수·음식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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