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보증부대출 잔액 다시 늘어... 지난해 3분기 290조원 넘어서
가계·기업 상환 능력 저하에 건전성 관리 위해 보증부대출 확대
사실상 '떼인 돈' 추정손실여신, 지난해 3분기 전년 동기 대비 25.26%↑
[녹색경제신문 = 이준성 기자] 은행권이 비교적 안전한 자산으로 분류되는 보증부대출 취급을 다시 늘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 및 고금리 장기화로 사실상 '떼인 돈'인 추정손실여신이 급격하게 불어나는등 건전성 관리에 비상등이 켜지자 조치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17일 <녹색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5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보증부대출 잔액은 290조289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5% 증가했다. 보증부대출 잔액은 지난 2022년 3분기 말 역대 최대치인 299조4889억원을 기록한 뒤 점차 감소해 지난해 1분기 말 285조 3011억원까지 떨어졌으나 재차 증가세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3분기 말 전체 대출 잔액(1579조6717억원)에서 보증부대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18.37%까지 상승했다. 은행 대출 5건 중 1건이 보증부대출이라는 얘기다.
보증부대출은 부동산 등 물적 담보물 대신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도시보증공사, SGI서울보증 등 신용·공적기관이 제공하는 보증서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대출이다. 차주가 돈을 갚지 못한 경우에는 보증기관이 대출금을 먼저 은행에 내준 뒤 이후 대출자에게 회수하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돈을 떼일 가능성이 극히 낮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출'로 평가받는 이유다.
은행권이 이처럼 보증부대출 취급을 다시 늘린 배경에는 크게 증가 중인 부실채권이 자리한다. 경기 침체 및 고금리 장기화로 가계와 기업 차주의 상환 능력이 저하돼 빌려준 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일이 늘어나자 건전성 강화 차원에서 비교적 안전한 보증부대출로 눈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5대 은행의 고정이하여신(NPL·부실채권) 잔액은 5조582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8.56% 늘었다. 금융사는 자산의 건전성을 정상-요주의-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분류하는데 이 중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3개 단계가 고정이하여신에 포함된다. 통상 고정이하여신이 증가했다는 것은 그만큼 금융사의 대출 리스크가 확대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은행권은 고정이하여신 중에서도 추정손실여신이 급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보증부대출을 확대 중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5대 은행의 추정손실여신 잔액은 836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26% 늘었다. 추정손실여신은 회수가 불가해 사실상 손실이 확정된 여신으로, '떼인 돈'과 다름이 없어 가장 질이 나쁜 대출로 꼽힌다. 전액을 충당금으로 잡아야 하는 탓에 은행의 실적에 미치는 악영향도 그만큼 크다.
금융권은 은행들이 당분간 보증부대출 확대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관측한다.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계획 이행의 기준이 되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관리하는 측면에서도 보증부대출 확대가 이점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CET1 비율은 은행 등의 손실흡수능력을 보여주는 자본적정성 지표로, 자기자본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자본(보통주·이익잉여금 등)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눈 값으로 계산된다.
보증부대출의 경우, 대출을 내줄 때 차주의 신용도가 아닌 보증기관의 신용도를 기준으로 위험가중치가 산정돼 동일한 규모의 대출이라도 다른 상품 대비 낮은 위험가중치가 적용된다. 즉, 일반적인 대출 대신 보증부대출을 확대하면 CET1 비율 계산 시 분모가 되는 RWA 값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로 달러·원 환율이 급등함에 따라 외화 부채의 원화 환산액 증가와 그로 인한 은행권 전반의 CET1 비율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 상황"이라며 "주요 금융지주들이 밸류업 등을 위해 CET1 비율 사수에 집중하고 있는 만큼, 은행들도 한동안은 보증부대출 취급을 늘려가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은행권이 보증부대출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보증부대출 확대로 인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중소기업 및 취약계층 등에 대한 대출은 축소될 수 있는 데다가, 부실 발생 시에는 신용 위험이 보증기관들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보증기관이 손실을 부담하는 보증부대출의 특성상 은행들의 대출 심사가 부실해져 리스크 관리에 되려 구멍이 날 수 있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보증부대출의 확대가 실수요자 및 취약계층에 대한 대출 축소로 연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며 "각 은행이 보증부대출의 적절한 취급 규모와 운영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준성 기자 financial@greened.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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