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Y] 창고 영화의 반란?…'소방관' 흥행에는 이유가 있다

2024-12-24

[SBS 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영화 '소방관'(감독 곽경택)의 흥행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지난 23일 개봉 19일 만에 전국 250만 명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달성했다. 이로써 '파묘'(1,191만 명), '범죄도시4'(1,150만 명), '베테랑2'(752만 명), '파일럿'(471만 명)에 이어 2024년 개봉 한국영화 흥행 톱5에 이름을 올렸다.

세부 지표는 더 놀랍다. 개봉 2주 차가 1주 차 보다 관객 수가 많았다. 개봉 첫날 8만 명대로 출발한 '소방관'은 3주 차 평일까지도 기세를 이어갔다. 일일 관객 수가 8만 명 아래로 떨어진 건 개봉 4주 차를 맞은 23일이 처음이다. 20일 가까이 하락세 없이 이뤄낸 250만 돌파다. 이는 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이 높고,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도 좋았다는 말이다.

'소방관'의 깜짝 흥행은 올해 영화계의 최대 이슈로 기록될 전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2020년 촬영을 마치고 무려 4년이나 묵힌 '창고 영화'다. '창고 영화는 잘될 수 없다'는 불분율을 깬 성공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국내 주요 투자배급사 창고 영화의 수는 늘고, 이 영화들의 개봉은 각 회사의 오랜 과제였다.

'소방관'의 경우 천재지변보다 더한 악재가 발목을 잡은 케이스였다. 주연 배우인 곽도원이 음주 운전으로 적발되며 국민들의 실망과 공분을 산 것. 물의 이후 1~2년 후 자숙 시간을 갖다가 슬그머니 복귀하는 배우들도 허다하지만 곽도원은 여의치 않았다.

제작사에서 개봉을 강행하기 어려웠던 건 배우의 상황과 영화 속 캐릭터와의 괴리 때문이었다. 곽도원은 '소방관'에서 시민을 구하기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소방관 '진섭'을 연기했다. 현실에서 물의를 일으킨 배우를 영화가 영웅화하는 것처럼 여겨져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급기야 투자배급사까지 바뀌는 악재가 겹쳤다. 당초 투자배급사는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였으나, 이 회사가 투자 사업을 철수하며 바이포엠 스튜디오가 판권을 샀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영화에 호재가 됐다.

바이포엠 스튜디오는 광고 마케팅 업체로 출발한 콘텐츠 기업이다. 지난 2022년 영화 투자배급업에 출사표를 던졌고 그해 '데시벨' 부분 투자, '동감' 메인 투자로 영화 사업을 시작했다. 두 영화는 손해를 기록했지만 외화 배급에서 활로를 찾았다. 같은 해 일본영화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가 120만 명을 돌파하면서 투자 대비 대박을 쳤고, 지난해 선보인 중국 영화 '여름날 우리'(42만 명), 올해 개봉한 일본 영화 '남은 인생 10년'(56만 명) 등도 쏠쏠한 재미를 봤다.

'소방관'은 바이포엠 스튜디오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한국 영화 투자배급작이었다. 그러나 언론시사회 이후만 해도 이 영화의 흥행을 낙관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곽도원 리스크'가 워낙 큰 데다 극장가 비수기라 관객을 모을 여지가 많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앞뒤로 '위키드', '모아나2'가 포진하고 있었고 경쟁작 '1승'에도 예매율에서 밀리는 형국이었다. 또한 창고 영화 특유의 올드함이 느껴졌고, 교훈적 메시지가 두드러져 젊은 관객을 공략하기 어렵겠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해 첫 주말을 빼고 계속해서 1위 행진을 이어갔다.

'소방관'의 흥행은 영화의 내,외적인 요인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고 보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영화 내적으로는 실화의 힘과 영화의 진정성이 관객에게 어필했고, 영화 외적으로는 마케팅과 홍보의 힘이 컸다. 바이럴 마케팅에 남다른 역량을 가진 바이포엠 스튜디오의 2030 맞춤 마케팅을 통해 관객의 호기심을 유발했고, 이는 영화 관람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

업계에서도 바이포엠의 경쟁력을 재고하기 시작했다. 30대의 소규모 인력으로 꾸려진 이 회사는 의사결정이 과감하고 빠르기로 유명하다. 기존의 투자배급사들이 안전성을 지향하다 변화하는 영화 시장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과 대비된다.

홍보사 호호호비치의 홍보 전략도 좋았다. 호호호비치는 영화 홍보 업계 자타공인 1위 회사다. 동 시기에 개봉 영화가 몰려도 각각의 영화에 맞는 홍보전략을 수립하기로 유명하다. '소방관'의 '119 챌린지'(유료 관람한 관객 1인 티켓 금액당 119원을 대한민국 소방관 장비 및 처우 개선을 위해 현금 기부)도 바이포엠과 호호비치의 아이디어로 추진한 이벤트다.

이채현 대표는 '소방관'의 흥행에 대해 "보통 홍보나 마케팅이 일방향인 경우가 많은데 '소방관'은 관객과 양방향 소통과 공감이 이뤄진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119 챌린지에 대한 호응과 관람 후 입소문을 내주시는 관객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119 챌린지'는 관람만으로도 선행을 할 수 있다는 의미 부여가 돼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채현 대표는 "119원이라는 금액이 적자면 적고 많다면 많은 금액이라고 볼 수 있지만, 벌써 3억 원이나 모였다. 바이포엠이 부금의 일부를 소방관 처우개선에 쓰기로 결정하기로 한 통 큰 결단과 이 챌린지에 기꺼이 응해준 관객들이 함께 만든 뜻깊은 기부"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악재를 대하는 곽경택 감독의 단호한 대처도 좋았다는 평가다. 곽경택 감독은 제작보고회부터, 기자간담회, 인터뷰 등에서 영화에 피해를 입힌 곽도원에 대해 따끔한 지적과 비판을 가했다. 영화의 주인공이기에 촬영분을 편집으로 잘라낼 수도 없었지만 현실에선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닌 '선긋기'를 하며 영화에 입힐 피해를 최소화했다.

또한 개봉 전날 터진 비상계엄 사태 여파도 조기에 진압했다. 곽경택 감독은 친동생인 곽규택 국민의 힘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불참했다는 사실에 비판을 가하며 일각에서 조성되고 있던 불매운동 분위기를 잠재웠다.

금일(24일) '하얼빈' 개봉과 함께 '소방관'의 예매율은 2위로 내려왔지만, 300만 돌파는 기정사실이다. 400만 돌파까지도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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