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국이 불안정할 때일수록 ‘여가생활’ ‘문화생활’로 치부되는 연극, 뮤지컬 등의 장르는 누군가에겐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에 놓이지만, 반대로 또 다른 면에서 들여다보면 작품을 통해 현 시국을 되돌아보고 깊은 울림과 배움을 준다는 평을 얻기도 한다.
지난 12월 3일, 난데없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에 난입한 계엄군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세력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불편한 진실들 그럼에도 그 안에서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기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정치인들. 그로 인해 무너지는 경제, 그리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까지.
인간의 탐욕과 이중성, 잔혹함, 통제와 지배, 극단적인 폭력성까지 인간의 다양한 욕구들이 뒤섞인 혼란한 시대다. 연극과 뮤지컬은 정세를 은유적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관객을 통해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물론 이번 12.3 내란 사태를 예견하고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 작품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다시 들여다보게 한다는 점에서 배움의 가치가 충분하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되고 있는 서울시뮤지컬단의 뮤지컬 ‘맥베스’는 충성심가득한 장군 맥베스가 권력에 눈이 멀어 왕을 살해하고 왕좌를 차지하지만, 점점 미쳐가다 모든 걸 잃고 죽는 이야기를 그린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2023년 초연후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물론 전 시즌부터 작품은 큰 인기를 끌었지만, 주제가 권력과 욕망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터라 현 시국과 맞닿아 있어 현 시국과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제약회사 유한양행의 설립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유일한 박사의 삶을 모티브로한 초연 창작 뮤지컬 ‘스윙데이즈_암호명A’(충무아트센터 대극장, 2025년 2월 9일까지)도 화제다. 자신의 자리에서 소중하고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지금 시국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며 뭉클함을 안긴다. 극중 대사들도 마찬가지로 현 시국과 오버랩된다.
도나스마르크 감독의 영화를 연극으로 각색한 ‘타인의 삶’(LG아트센터서울 U스테이지, 2025년 1월19일까지)도 마찬가지다. 물론 현 국내 정세와 배경은 다르다. 작품은 사회주의 독재 정권이 집권한 동독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면서 비밀리에 민주주의를 위해 권력에 대항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의성 있는 연극이라는 평이 잇따른다.
안은진의 복귀작으로도 주목을 받은 연극 ‘사일런트 스카이’(명동예술극장, 12월28일까지)는 19세기 초 투표권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대 저마다의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한 하버드대학교 천문대의 세 여성 천문학자 이야기를 통해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또 다른 울림을 주고 있다.
특히 ‘사일런트 스카이’ 김민정 연출은 “어떤 것도 의미 없는 건 없다”며 현 정국에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사일런트 스카이’는 천문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놀랄 정도로 여러 맥락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20세기 초는 격동기였고, 과거를 통해 현재를 살고 배우는 것이 명확하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가 현재 이 공연을 통해 배우고 있는 것처럼, 저희의 현재 또한 미래의 누군가에게 배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미래의 누군가에게는 저희의 현재의 선택들이 위로받고, 격려받고, 지지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인류가 진보해 온, 함께 나아 온 역사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