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대작 영화 '보고타' 주연 송중기, "'대부'의 알 파치노 상상하며 연기"

2024-12-25

1997년 경제대란 속에 ‘IMF(국제통화기금) 탈출 이민’이 부쩍 늘었다. 생존형 이민행렬은 제 3세계로도 향했다. 원화 가치가 추락하면서, 상대적으로 정착 비용이 덜 드는 중남미, 아프리카에서 새 삶을 꾸려보겠다는 절박감이었다.

영화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이하 보고타)’(31일 개봉)의 주인공 국희(송중기)도 그런 이민자 중 하나다. 아버지(김종수)가 하던 봉제공장이 IMF 여파로 망하면서, 온 가족이 지구 반대편,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로 향한다. 영화는 19살 국희가 한인 상인회 큰손 박 병장(권해효), 통관 브로커 수영(이희준)이 장악한 의류 밀수에 휘말리는 12년 세월을 담았다. 이민자가 해외 교민사회 거물로 거듭나는 ‘한국판 대부’라 할만하다.

시장 패권을 둘러싼 암투, 현지인과 갈등 등 전개 방식은 익숙한 편이지만, 마약 생산국으로 악명 높은 콜롬비아를 무대로 속옷‧패딩점퍼 밀수 소재를 펼친 것이 기존 남미 무대 범죄물과 차별점이다.

송중기 "IMF 부친 사업 지켜봐 공감…'대부' 참고"

배우 송중기(39)가 현지인들의 복장에서 착안한 귀걸이, 반 삭발 등 이미지를 변신해 10~30대 시절을 모두 소화했다. 벨기에 망명 탈북민을 연기한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지난해 칸영화제 초청작 ‘화란’ 등 최근 스크린에서 청년의 방황을 주로 그려온 데 이어서다. 용산 참사 소재 법정물 '소수의견'(2015)로 데뷔한 김성제(54) 감독이 영화 ‘초록 물고기’(1997) 주인공 막동(한석규)을 생각하며 빚은 국희 캐릭터가 그를 만나 더 뜨거워졌다.

2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송중기는 “‘대부’(1972)에서 가족 범죄에 발 들이게 되는 마이클 콜리오네(알 파치노)를 상상하며 연기했다”면서 “초등학생이었던 IMF 당시 실제 사업가인 아버지의 고충을 지켜본 경험이 있어 영화 배경에 더 공감했다”고 털어놨다. 같은 날 이어 만난 김 감독은 “더 넓은 세계를 꿈꾸며 ‘헬조선’을 떠난 사람들이 현지 한인 사회라는, 더 작은 공동체에 갇혀 살고 있더라. 그런 아이러니가 (특정 지역 떠나)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더 선명하게 보여주는 보편성으로 다가왔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감독 "남미서 '역발상' 패딩 장사, 교민 실화죠"

‘보고타’는 시대 분위기, 현지 상황을 촘촘하게 새긴 묘사가 돋보인다. 제작사 대표가 1990년대 실제 보고타를 방문한 데서 모티브를 얻어 기획했고, 이후 메가폰을 잡은 김 감독이 10여 차례 현지를 찾아 한인들을 인터뷰하며 실상을 새겨 넣었다. 김 감독은 “콜롬비아 한인의 90%가량이 보고타에 사는데, 대개 옷 장사를 하더라”면서 “‘콜롬비아에 밀수 아닌 물건이 있기나 해’ 라는 작은 박 사장(박지환)의 대사처럼 밀수품이 삶의 일부이던 시절을 그렸다”고 말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발판으로 남미를 택한 국희의 아버지는 베트남전 전우 박 병장(권해효)만 믿고 보고타로 향하지만, 도박과 약물로 무너진다. 현지 세관에 뒷돈을 대 동대문 의류 밀수 사업을 악착같이 독점하는 박 병장의 별명 ‘라 쿠카라차(La cucaracha‧스페인어로 바퀴벌레란 뜻)’는 김 감독이 남미 베네수엘라에 이민 간 한인의 실화에서 따온 것. 적도 부근 남미의 고산 도시에서 경량 패딩 장사를 하는 극 중 수영의 역발상 수완도, 실제 보고타에서 성공한 한인 사업가를 김 감독이 인터뷰해 반영했다.

송중기는 또 “‘보고타’ 제작사 대표님이 콜롬비아에서 대학 생활을 한 것으로 안다”면서 “극 중 수영이 대우 주재원으로 보고타로 파견을 왔다가 회사가 부도나며 눌러앉고, 명문대 학연으로 무리지어 다니는 설정도 당시 대표님 현지 경험에 상상을 더한 것”이라 부연했다.

촬영 3개월 만에 팬데믹…귀국길이 첩보작전

콜롬비아 보고타와 휴양도시 카르타헤나, 지중해 섬나라 사이프러스 등 해외 로케이션 촬영도 볼거리다. 보고타로 이민 간 첫날 국희가 가난한 1구역 산동네에서 오토바이 강도를 쫓는 첫 장면부터다. 실제론 부촌인 6구역에 주로 머물렀던 제작진이 이 장면만은 1구역에서 촬영했다. 총든 노상강도가 출몰하는 일상 속에도 음악만 들리면 누구든 춤추는 흥겨운 분위기는 스태프들이 촬영 준비부터 6개월간 보고타에서 살다시피 하며 담아낸 것.

2019년 넷플릭스 스페이스 오페라 ‘승리호’ 촬영을 마치고 배우들 중 가장 먼저 현지 합류한 송중기, 이희준은 각각 스페인어 공부, 살사 댄스 학원 교습에 매진하며 “현지의 바이브”(송중기)에 젖어들었다. 현장에도 한국인보다 현지 스태프가 더 많았다. 주요 현지인 캐릭터도 콜롬비아 및 중남미 배우들을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했다.

‘보고타’는 코로나19 팬데믹 직격탄을 맞기도 했다. 2020년 3월, 콜롬비아 정부 봉쇄령으로, 한국 촬영팀이 촬영 3개월 만에 전원 귀국했다. 항공편이 부족해 귀국길도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다. 50%가량 남은 촬영분량은 이듬해 6월 한국에서 실내 촬영을 시작으로 사이프러스 로케이션을 통해 마무리했다. 그 사이 드라마 ‘빈센조’(2021, tvN)를 촬영해 먼저 선보인 송중기는 차기작으로 제안받은 ‘재벌집 막내아들’(2022, JTBC) 일정을 미루고, ‘보고타’ 추가 촬영을 했다.

재혼 송중기, 콜롬비아 장모님 덕 보고타 더 각별

지난해 영국 출신 배우 케이티 루이스 사운더스와 재혼한 송중기는, 콜롬비아 출신 장모 덕에 ‘보고타’가 더 각별해졌다. “저희 영화가 할리우드 범죄물 ‘시카리오’(2015) ‘나르코스’(2015~2017)처럼 총을 난사하지 않지만, 보고타의 무질서한 시기를 담았다. 이후 콜롬비아가 예전의 (범죄 국가) 이미지를 걷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해온 걸로 안다”고 전한 그는 “처가댁 식구들이 보고타에 많이 살고 교류도 하고 있다. 흥 많고 정 많고, 음식이 정말 맛있는 나라”라면서 “장모님이 제가 스페인어를 잘했는지 영화를 보려고 벼르고 계실 것”이라 농담을 덧붙였다.

올해 마지막 날 극장가에서 만나게 될 ‘보고타’는 이역만리에서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순제작비는 125억원으로, 손익분기점은 관객 300만명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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