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로 시작했지만, 작은 회사 CEO처럼 생각하고 움직여야 했다.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람. 그건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17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진행된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 둘째날 마지막 연사로 5인조 K팝 걸그룹 아이들(i-dle)의 리더이자 메인래퍼, 총괄프로듀서인 전소연(27)이 등장했다. 티셔츠에 배기진 차림의 그는 ‘나는 나를 파괴하고, 다시 나를 만든다: 아이돌 시스템 안에서 ‘혼종’으로 생존한 한 창작자의 이야기’란 주제로 약 25분간 강연했다.
키워드는 경계 허물기였다. 전소연은 “두 단어 ‘아이돌’과 ‘크리에이터’ 사이에 서 있다”면서 기획사 연습생으로 시작해 한계를 넓혀온 과정을 들려줬다. 일차적으로 강조한 건 ‘자기만의 무기’. 2016년 ‘프로듀스 101’ 무대 당시 타고난 스타성의 한계를 절감했지만 좌절 대신 더욱 도전했고 자신의 무기가 ‘작곡’에 있단 걸 발견했다. 2018년 ‘(여자)아이들’(당시 명칭)로 데뷔할 때 자작곡 ‘LATATA’가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압도적 호응을 얻으면서 ‘자체 프로듀싱’이 탄력 받았다. 스스로 메시지를 담아내는 아이돌이란 사실이 차별화이자 ‘사업전략’이 된 순간이다.

이후 ‘아이들’의 성장을 스타트업에 대비해 풀어갔다. 전소연이 앨범 방향과 타이틀곡을 설계하면 멤버들이 각자 역량으로 나머지를 채우는 걸 “시스템에 의존하는 대신, 우리 스스로가 하나의 창작 시스템이 되는 방식”이라고 했다. 솔로나 유닛 활동 지원도 ‘사내 인재 육성’에 빗댔다. 자신의 경험을 “K팝이라는 거대 산업 속 한 작은 스타트업의 생존기”라고 요약한 이유다.
이 과정에서 대표곡인 ‘LION’, ‘Allergy’, ‘Queencard’, ‘TOMBOY’ 등의 창작 비화를 소개했다. 특히 “스타트업이 죽음의 계곡을 건너듯” 자신들에게 찾아온 위기(멤버 구성 변화) 땐 “모든 게 다 끝났다는 생각에 며칠간 곡도 쓸 수 없었다”며 아프게 돌아봤다. 하지만 “상처를 어떻게 서사로 만드는지, 더 단단해지는지 증명하고 싶어” 쓴 ‘TOMBOY’가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결과적으로 “대중음악이라는 가장 상업적인 틀 안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줄타기와 ‘혼종’이야말로 ‘아이들’다운 것이라고 했다.
“이런 자리가 익숙지 않지만 두려움을 없애는 길은 연습뿐이라 생각했다”는 그는 새벽부터 1시간에 걸쳐 강연을 리허설한 사실이 공개돼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세상이 정해놓은 경계에 끊임없는 의문을 던지고 전소연만의 서사를 만들어가겠다”며 마무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