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아침] 산비둘기(1)

2024-10-13

마을은 산으로 빙 둘러 싸여 있었다. 신작로로 난 길은 넓어서 차가 드나들 수 있었다. 그 외 길은 경운기는 겨우 다닐 수 있는 길이었다. 산 사이로 난 샛길이 다른 마을로 연결시켜 주었다. 높은 산은 아니라 야트막한 산이어서 동네사람들은 산에서 땔감을 구해와서 불을 때서 밥을 짓고, 소죽도 끓였다.

홍희도 초등학교를 마치면 커다란 마대자루 하나와 깔꾸리를 들고 산에 갔다. 큰 나무를 하지는 못하고 깔비(소나무 갈비, 소나무의 낙엽)를 하러 갔다. 소나무의 낙엽을 경상도 사투리로 깔비라고 한다. 가시처럼 뽀족뽀족한 소나무 잎이 누렇게 익어서 떨어지면 그것을 긁어와서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불이 아주 잘붙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가느라란 잎이 노래져서 비가 떨어져 내리듯이 떨어져 쌓인 것을 깔꾸리로 슥슥 긁어 모아 자루에 담는 것이다. 가벼워서 한 자루를 담아도 홍희키보다 커도 어깨에 짊어지고 집에 올 수 있다. 진한 황갈색의 깔비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따뜻해졌다. 불을 땔 때 타닥타닥 거리면서 불이 붙고, 화르르 센 불이 일어나서 다른 나무에도 불을 일으키는 마법같은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쉽게 붙는 만큼 쉽게 불이 꺼지는 것이 아쉬움인 깔비를 홍희는 자주 하러 갔다.

아버지나 엄마, 오빠들은 쓰러진 나무를 잘라서 오기도 하고, 베어낸 나무 밑동이 말라서 땔감으로 쓰기 좋은 것을 가져오기로 했다. 그렇게 산에서 땔감을 하다 보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 꿩꿩 울다가 푸드득 날아오르는 꿩도 있고, 이름을 알지 못하는 작은 새들도 짹짹짹 거리며 나무위를 폴짝폴작 날아다닌다. 밤에는 부엉이가 우는 소리도 들린다. 쏙꾹쏙꾹 소쩍새 울음도 들린다. 가끔 높은 나무위에 새둥지가 동그랗게 모자처럼 있는 것을 보기도 한다. 작은 아기새들이 어미새를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째째째째 우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지는 못했지만 집 처마밑에 있는 제비새끼들은 까만 몸에 입을 벌리면 노란색이 선명했고,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어미새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었다. 아마 입을 크게 벌릴수록 자기에게 줄 거라고 입 크기로 배고픔을 표현했을 것이다.

가끔은 산비둘기 소리도 들렸다. 구구구 소리가 멀리서 들리면 듣기 싫지 않았다. 그런 산비둘기를 아버지가 땔감을 하다가 발견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잡아온 것일 수 있는데, 그 때는 아버지가 어미가 없는 산비둘기 새끼를 구해왔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산에 살다가 죽을까봐 집으로 데려왔다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의 행동으로 받아들였다.

산비둘기는 작고 보드랍고 깨끗했다. 갈색빛이 나는 털을 쓰다듬어 주면 맨들맨들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었다. 홍희가 잘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했다. 집에는 소도 있고 닭, 토끼도 있었지만 산비둘기는 마치 친구같았다. 작은 우리에 짚을 깔고 헌 옷을 깔고 다리에는 가는 끈을 묶어서 날아가지 못하게 했다. 너무 어려서 날지 못 했지만 혹시나 우리밖으로 나갈까봐 한 행동이다. 학교갔다오면 쳐다보고 물도 주고, 모이도 주고 했다. 조금씩 자라는 것 같았다. 말을 하지 못하지만 홍희를 알아보는 것 같았고, 홍희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집에 와서 관심을 갖고 돌볼 대상이 생긴 것이 좋았던 것 같다. 막내였던 홍희, 각자의 삶을 사느라 바빳던 부모님과 형제. 홍희는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보다. 그랬던 산비둘기였는데 어느날 사라졌다. 분명 날아가지는 못할텐데 어디로 갔나하고 동네사람들 집을 방문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집을 방문했을 때 산비둘기가 있었다. 홍희보다 한 살, 세 살많은 남자아이가 둘 있던 집이었다. 아마 그 둘 중 누군가가 가져갔으리라. 산비둘기는 흔한 새가 아니다. 홍희네 집에 있던 산비둘기가 틀림없었고, 틀림없다고 홍희는 주장했던 것 같다. 이건 우리집 산비둘기가 맞다. 자신이 키우던 산비둘기가 맞다. 데리고 가겠다. 그들은 아주 부정은 하지도 않았고, 미안해 하지도 않았다. 입맛을 쩍쩍 다셨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자기들이 훔쳐온 것인데 돌려줘야해서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어쨌든 홍희가 데리고가지 못하게 막지는 않아서 홍희는 당당히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도둑 맞을까봐 불안해하며 더 잘지키고 돌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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