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 천막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사람들의 수다, 턴테이블에서 흐르는 잔잔한 재즈가 섞인다. 흘러나오던 음악은 힙합으로, 록으로, 케이팝과 팝으로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바뀐다. 이른바 ‘바이닐’로 불리는 LP에서 재생되는 음악이다. 지난 26일 오후 서울 성동구 펍지 성수에서 열린 ‘제14회 서울레코드페어’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갑작스레 내린 비로 을씨년스러웠지만, 사람들은 우산을 내려둔 채 LP로 가득찬 상자들을 뒤졌다. 마켓에 참여한 한 상인은 “맑았던 어제는 사람이 세배 더 많았다”며 웃었다.
바이닐이 2030세대의 일상에 침투하고 있다. 한때 중장년층이나 일부 힙스터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최근들어 젊은층을 타킷으로 한 ‘굿즈’로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팝 아이돌들이 연달아 바이닐 앨범을 발매하고 있는 것은 물론, 미국의 팝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바이닐이 미국에서 역대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며 ‘바이닐 르네상스’가 찾아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바이닐 시장은 한동안 주춤했었던 게 사실이다. 펜데믹으로 소비침체와 경기 침체가 취미생활의 영역에 해당하는 바이닐 시장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소비가 줄면서, 발매되는 바이닐의 종류와 양도 줄어들었던 터다. 지난 25~26일 약 1만여 명의 사람들이 찾은 서울레코드 페어도 펜데믹 이전의 수준을 아직 회복하지는 못했다고 업계관계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최근 시장 상황은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특히 케이팝 업계에서 바이닐 버전 앨범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시장은 활기를 띠게 됐다는 것이다. 서울레코드페어에서 만난 마장뮤직앤픽처스의 구교영 주임은 “케이팝 아이돌들이 대량으로 (바이닐을) 주문하기 시작하면서 바이닐 생산량은 지난해 대비 4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올해만 하더라도 블랙핑크 로제, 에스파, 엔믹스 등 굵직한 아티스트 들이 CD 버전 앨범과 바이닐 앨범을 함께 발매했다.
더 눈에띄는 현상은 바이닐을 구매하는 젊은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구 주임은 “이번 페어만 하더라도 20·30 고객이 많다”며 “새로운 세대들이 바이닐을 원하게 되면서 아이돌들도 굿즈 개념으로 바이닐을 만들게 됐고, 10여 년 동안 바이닐을 소유의 개념 자체가 점진적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듣기 위해 바이닐을 샀던 과거와 달리, ‘굿즈 소장’의 개념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실제 페어에서 만난 젊은 층은 바이닐을 굿즈로 바라보고 있었다. 바이닐을 구매하기 시작한 지 2년가량 됐다는 정준씨(23)는 아예 LP를 플레이할 턴테이블이 없다. 그는 “정말 좋은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면 소장을 위해 바이닐을 구매한다”며 “CD는 듣는 용도로 사용하고 엘피는 전시해둔다.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요롭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바이닐은 굿즈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며 “앨범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굿즈 티셔츠 한 장에 오만 원이 넘는 시대에, 3~4만 원대의 굿즈라고 생각하면 괜찮은 가격이라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현상은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관찰된다. 지난해 미국의 연간 바이닐 판매량은 4300만장으로 15년간 15배 이상 증가했다. 하지만 미국의 음악 판매 데이터 회사 ‘루미네이트’가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바이닐 레코드를 구입한 소비자 3900명 중 절반이 턴테이블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예컨대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12집 <더 라이프 오브 어 쇼걸>의 바이닐은 발매 첫 주에만 120만 장이 팔리며 미국 내 단일 주간 LP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테일러는 이번 바이닐이 단순한 음반이 아닌 ‘소장형 예술품’으로 기획했음을 밝혔다. 바이닐을 굿즈로 여기는 팬층을 겨냥한 발언으로 들렸다.
박성수 오디오 평론가는 이같은 현상을 두고 “최근 들어 CD로 제작된 음반을 바이닐로 리마스터링(재편집)하는 경우가 많다”며 “바이닐은 일종의 수비니어(기념품)이다. (바이닐은) 크기가 작은 CD와 달리 액자에만 넣으면 작품이 되는, 일종의 커버아트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티스트들의 바이닐 앨범 제작이 일종의 ‘앨범 쪼개기’의 연장 선상 아니냐는 비판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앨범 쪼개기는 음원차트 성적에 반영되는 앨범 판매량 수치를 올리기 위해 표지와 구성품이 다른 앨범을 수십 종 발매하는 방식을 칭한다. 팬심을 이용해서 판매량을 올리려는 기획사들의 상술이 굿즈 열풍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의 바이닐 붐이 음악을 듣는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CD에 밀려났던 바이닐의 부활은 정감있는 음질 등을 선호하는 음악 애호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을 듣는 수단이 아니라 일종의 굿즈로 대하는 젊은 층에게 바이닐 열풍은 잠깐의 유행이 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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