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호관세 유예일 종료 이전 미국과 주요 무역 상대국과의 협상이 진전을 보일 것이란 낙관론으로 미국 뉴욕증시가 상승했다. 스태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투자자들은 7월 8일로 예정된 상호관세 유예기한 만료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압박과 강공을 통해 무역 상대국과의 협상 진척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월가 일각에서는 주요 무역 상대국과의 협상이 지연되거나 최종적인 상호 관세율이 예상보다 높을 경우 미국 경제에 대한 전망이 달라지고 증시도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다.
30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275.50포인트(+0.63%) 오른 4만4094.77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31.88포인트(+0.52%) 상승한 6204.95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96.27포인트(+0.47%) 오른 2만369.73에 장을 마감했다.
트럼프 ‘무역 중단’ 강수에 캐나다 디지털세 중단…월가 “무역 협상 진전이 상승 촉매”
디지털세를 둘러싸고 중단됐던 미국과 캐나다의 무역 협상이 재개된다는 소식에 투자자 심리가 살아났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캐나다가 미국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자 협상 중단을 선언한바 있다. 캐나다는 애초 이날 해외 대형 소셜커머스 기업에 대한 첫 디지털세를 징수할 예정이었으나 이를 중단했다.
이날 캐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와 관련 CNBC와의 인터뷰에서 캐나다가 디지털 서비스세를 철회하면서 무역 협상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캐롤라인 래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기자들에게 “캐나다의 마크 카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에 양보했다”고 밝혔다.
캐나다 측도 협상 타결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캐나다 재무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카니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 21일까지 무역 협정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도 미국과 관세협상 기한 종료를 앞두고 막바지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현재 우리 실무팀이 미국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고 나도 내일(7월 1일) 튀르키예 일정을 마친 뒤 워싱턴에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2, 3일 양일간 현지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최종(eventual) 협상을 하는 것이 현재의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측이 EU와의 무역 합의를 위한 초안을 제안했으며 현재 양 측은 이를 기반으로 협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곳곳에서 암초는 남아있다. 토마 레니에 EU 집행위원회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은 미국과 협의에서 논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EU의 입법 절차는 협상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의미다. DMA는 빅테크의 시장 지배력 남용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법이며, DSA는 온라인상 허위·불법 콘텐츠를 차단하기 위한 법이다. 둘 다 EU가 시행하는 대표적 디지털 규제로 꼽힌다.
일본과의 협상도 원활하지 않은 분위기다. 트럼프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에 “나는 일본을 매우 존중한다. 하지만 그들은 대량의 쌀 부족을 겪고 있는데도, 우리의 쌀을 수입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다시 말해 우리는 그들(일본)에게 서한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앞서 성실하게 무역 협상에 임하지 않는 나라에는 미국이 관세율을 일방 통보할 것이란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일본에 서한을 보내겠다는 예고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의 협상 진척에 불만족한다는 뜻으로 캐나다와 마찬가지로 압박 강도를 높이는 조치로 풀이된다.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상호관세 유예 연장 가능성에 대해 질문받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것(유예 연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며 “그는 그들(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이 선의로 협상하려 하지 않는다면 많은 나라들에 관세율을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주에 그 일을 하기 위해 무역팀과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시티 인덱스의 파와드 라자크자다 는 “금융 시장의 가장 큰 촉매제는 무역 협상의 진전”이라며 “중동이나 무역 전쟁에서 다시 큰 갈등이 발생하지 않는 한 거시 경제 지표에 따라 주식 시장은 큰 타격을 받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시장 심리를 짚었다.
4월 2일 수준 관세율이면 경제 충격 불가피…MMF 자금도 관망세
이날 캐나다와의 관세 협상 진척이 증시의 최고기록을 이끌었지만 월가는 상호관세의 결과에 따라 증시의 방향이 꺾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 시장이 보고 있는 미국 경제의 전망은 10%의 기본 상호관세만을 남기고 나머지 상호관세는 부과한 현재 수준의 관세 정책이 유지된다는 전제 하에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월가의 미국 경제전망 컨센서스는 관세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고, 경제성장률은 둔화하되 침체에 빠지지 않는 다는 관측이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의 ‘2025년 미국경제 동행 및 하반기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월가 투자은행들과 경제개발협력기구(OCED) 등 주요 기관의 올해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전망은 3%를 웃도는 수준이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올해 1.5% 안팎으로 침체를 면할 것으로 관측된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이날 “만약 상대국이 완강한 입장을 유지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관세는 4월 2일 발표 수준으로 다시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만약 트럼프 행정부가 4월 2일 수준의 관세율을 되살릴 경우 미국의 실효관세율은 현재 13~15% 수준에서 25%를 웃도는 수준으로 뛰어오르게 된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 오름세는 더욱 커지고 개인 소비지출과 기업 투자는 더욱 쪼그라들 전망이다. 현재 골드만삭스는 실효관세율이 13%에서 결국 17% 수준으로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은 지금까지는 관세가 4월 2일 수준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보는 분위기다. US뱅크자산관리의 수석 주식전략가인 테리 샌드벤은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면서 걱정의 벽은 무너지고 있다”며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이고 금리는 박스권에 머물고 있으며 기업실적은 상승 추세를 보여 주가는 하반기에도 상승할 수 있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JP모건체이스의 전략가팀도 실업률이 유의미하게 오르지 않는 한 미국 증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하와 맞물려 상승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반면 UBS파이낸셜서비스의 채권 전략 책임자인 레슬리 팔코니오는 “시장은 상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회복탄력성을 보였다”며 “하지만 하반기에는 변동성과 취약성이 예상되기 때문에 아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라고 경계했다.
시장의 자금 흐름에서도 경계의 분위기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날 바클레이스는 머니마켓펀드(MMF)에 쌓여있는 돈이 여전히 7조 달러에 달하고, 금과 비트코인이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MMF는 주로 단기 국채에 투자하는 안전한 투자처로, 아직 MMF에 많은 자금이 머물고 있다는 것은 최근의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시중 유동자금이 주식 시장으로 본격 진입할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아울러 금과 비트코인 수요 증가는 미국 주식에 대한 헷징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