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6월 워렌 버핏은 자선 세계를 놀라게 하는 발표를 했다. 그는 평생 모은 재산을 자선활동에 계속 쓸 생각이지만 록펠러 재단, 포드 재단 등 다른 재단이 그랬던 것과는 달리 단순히 자기 이름의 자선재단을 만들어 독자적으로 운영하지는 않겠다고 발표했다. 재산 대부분을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에 맡겨 각자 따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빌 게이츠와 기부금을 합치겠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에게는 꽤 이상해 보이는 결정이었다. 그렇게 큰 기부금이 기부자의 이름을 따 재단을 설립하지 않은 첫 번째 사례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기 돈을 스물다섯이나 젊은 사람에게 맡기겠다는 얘기 아닌가?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버핏이 자신의 재산 대부분이 효과적이고 책임감 있게 쓰일 것이라고 믿는 이유가 수십 년에 걸친 신뢰와 협력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게이츠와 버핏의 관계는 사업을 하는 토대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그 관계의 시작은 바로 브릿지 게임이었다. 20년간 두 사람이 서로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고 업무와 자선활동에 협력해 온 이유 중 상당 부분은 그들이 똑같이 카드 게임을 즐겼기 때문이다.
게이츠와 버핏은 1991년 7월 5일 처음 만났다. 게이츠의 어머니 메리 맥스웰 게이츠가 가족 별장에서 버핏을 포함한 몇몇 친구가 함께하는 저녁 식사에 게이츠도 불렀다. 게이츠 여사는 시애틀 지역의 자선사업 커뮤니티와 기업가 커뮤니티에서 활발히 활동을 해왔으며 전에는 워싱턴 주립대학교 이사회, 자선단체 유나이티드웨이 그 밖에 몇몇 지역 사업체의 이사회 멤버로 활동해 왔다. 그녀가 유나이티드웨이에서 일할 때는 IBM회장 존 오펠을 만나 아들의 신생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잘해보도록 권유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가 이런 모임을 열어 자기 아들을 끌어들일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지속적인 브릿지 게임으로 서로 간의 이해의 폭을 확장
그렇지만 게이츠는 일하는 시간을 덜어내면서까지 버핏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사람은 그냥 종이조각을 사고팔 뿐이에요, 그건 진정한 가치의 창출이 아니잖아요”라고,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제 생각에는 그분과 저는 별로 비슷한 구석이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게이츠는 잠시 참석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막상 버핏과 만나자마자 금방 친해졌다. 게이츠는 그동안 자신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서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질문들을 버핏으로부터 받았다. 그렇게 잠시 방문하기로 한 것이 몇 시간의 대화로 이어졌고 그러면서 두 사람 다 브릿지 게임을 즐긴다는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그날부터 그들은 브릿지 게임을 하며 우정을 키우고 사업적 관계도 넓혀나갔다. 두 사람은 주로 인터넷으로 브릿지 게임을 했는데 게이츠는 ‘챌린저’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버핏은 ‘티본’으로 통했다고 한다. 버핏은 대략 1년에 4,000번 이상 인터넷에서 브릿지 게임을 한다고 추측되는데 당연히 게이츠하고만 게임을 한 것은 아니다. 이 게임으로 시작된 우정은 또 다른 공공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2004년에는 버핏이 게이츠에게 버크셔헤서웨이의 이사회에 참가해달라고 요청했다. 거기서 게이츠가 받는 보수는 1년에 겨우 2,000달러밖에 되지 않았다.(버크셔헤서웨이의 이사들은 S&P500 기업 중 가장 낮은 보수를 받는다) 게이츠가 이사회에 참가한 지 2년도 되지 않았을 때 버핏은 그의 기부를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기부와 더불어 게이츠 재단을 이끄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이사로 참석했다.
개인 간의 일면적 관계에서 다면적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
게이츠 어머니의 파티에서부터 수없이 함께한 브릿지 게임 그리고 버크셔헤서웨이의 미래를 위한 사업 이야기, 나중에는 세상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전략에 이르기까지 게이츠와 버핏의 관계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하지만 사실상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사업으로 아는 지인을 한 카테고리에 넣고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을 한 카테고리에 넣는 것이 쉽기는 하겠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업무와 개인적 친분 그리고 그 외의 다양한 관계가 여러 개의 경로를 통해 인연을 맺는다.
사회학자들은 두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각각 다른 여러 사회적 관계의 수에 ‘다면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 다면성은 꽤 최근에 연구되었지만, 사업관계에서 이런 사례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회학자들과 네트워크 과학자들은 수십 년간 다면성에 관해 연구해 온 결과 개인 간의 다면적 관계가 신뢰를 극적으로 강화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는 신뢰를 판단할 기회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와 최신 정보가 공유될 가능성을 더욱 높여준다.
일면적 네트워크를 더 많이 가진 사람들과 비교해 봤을 때 인적 네트워크 전반에 걸쳐 다면성의 정도가 높은 개인들은 자기 아이디어를 더 잘 검증할 수 있고 더 많은 조언을 구할 수 있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더욱더 다양한 정보를 모을 수 있다. 다면적 네트워크는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에 줄 수 있다.
따뜻한 인맥관리연구소장 / 시사뉴스 칼럼니스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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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돈
따뜻한 인맥관리연구소장 / 시사뉴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