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젊은 신바람 문화의 엄청난 힘

2025-01-10

참으로 어수선한 연말연시를 보냈다. 한국의 느닷없는 비상계엄과 탄핵의 소용돌이가 참 어지럽다. 순리대로 극복되고 정상의 삶으로 돌아오려면 아직 더 시간이 걸릴 듯하다. 살벌하고 시커먼 불확실성이 우리를 슬프고 답답하게 한다. 조국이 어두우면 우리는 더 컴컴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조국이니까.

하지만, 그런 어둠 속에도 우리는 귀한 것을 얻기도 했다. 건강한 국민들이 보여준 희망이다. 한국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굳건한 믿음, 특히 젊은이들이 보여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시위문화는 실로 놀랍고 자랑스러운 것이었다. 세계가 놀라고, 외국 언론들이 하나같이 감탄하며 부러워했다. ‘광장의 품격’ ‘경쾌한 저항’이라는 멋진 말도 나올 정도였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노벨 낭독의 밤’ 행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민들이 보여준 진실과 용기 때문에 감동을 많이 했어요. 자정이 넘은 시각에 굉장히 많은 시민들이 집에서 달려나가서, 모여서, 맨몸으로 장갑차 앞에 서 있기도 하고, 맨주먹으로 아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군인들을 껴안아 달래기도 하는 모습은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공격적인 구호와 깃발, 머리띠, 주먹질만 난무하는 살벌한 시위를 흥겹고 신바람 나는 축제로 변화시켰다. 그러면서도 할 말은 야무지게 다 하고,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정연하게 질서를 지키고, 쓰레기 하나 남기지 않는 감동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2030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 집회 참가자들은 온갖 아이돌의 형형색색 응원봉을 흔들며, K팝을 떼창으로 불렀다. “오랜만에 콘서트에 간 것처럼 스트레스 풀고 왔어요. 큰 소리로 신나게 노래하고 춤추면서 할 말 다 하고 왔습니다.”

그들이 들고나온 깃발이나 손피켓에 담긴 풍자와 해학은 뉴욕타임스 같은 외국신문에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연맹’ ‘전국 집에 누워있기 연합’ ‘강아지 발냄새 연구회’ ‘전국 수족냉증 연합’ ‘직장인 점심 메뉴 추천 조합’ ‘전국 과체중 고양이 연합’ ‘(내향인)’ ‘나, 혼자 나온 시민’ 같은 재미있는 깃발들….

어떤 소속이나 주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각자의 정체성을 발랄하게 드러낸 것이다. 과거의 촛불 시위처럼 하나의 상징으로 획일화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깃발과 응원봉으로 수없이 다양한 개개인이 하나의 지향을 말한 것이다.

이처럼 팽팽한 긴장과 대결의 상황을 재미와 신바람으로 풀어내면서 하고픈 말은 다하는 슬기, 이것이 바로 세계로 뻗어가는 K-컬처의 정신적 바탕이자 저력이다.

전문가들은 젊은 세대의 이런 시위문화를 ‘K팝 문화의 진화된 형태’로 해석하기도 한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아드는 과거의 과격 시위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한 시위라는 것이다.

새로운 집회문화의 바탕을 거슬러 올라가면, 월드컵 축구 응원과 촛불 시위가 있고, 더 올라가면 판소리나 탈춤의 질펀한 풍자와 해학, 익살, 골계의 미학이 있다. 그것을 오늘의 암울한 현실에서 살려낸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희망을 건다. 제발, 기성세대를 닮지 말기 바란다, 제발!

정치에 대한 생각이나 이념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 당연하다. 모두의 생각이 똑같으면 그건 병든 사회다. 문제는 생각이 다르다고 서로 적대시하며 싸우지 말고,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생각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려 하는 자세일 것이다.

대동소이(大同小異),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가르침, 거기에 더해 요새 젊은이들처럼 흥과 신바람과 재미를 더하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

신문기사의 한 구절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국은 정치인들이 잠든 사이에 성장한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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