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에 소비자 이중타격
A씨는 지난해 11월 필라테스 1대 1 수업 36회를 189만원에 결제했다. 그런데 한 달도 안 돼 폐업한다는 문자 안내를 받았다. 잔여 이용료는 환불받지 못했고, 사업자는 연락 두절됐다. B씨는 필라테스 1대 1 레슨 36회를 200만원에 결제했는데, 학원에서 2개월 만에 폐업 예정을 통보하면서 위약금(10%)을 공제한 뒤 일부만 환급하겠다고 했다. 사업자의 폐업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것임에도 불리한 환불 규정을 강제한 것이다. 지난해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대표적인 ‘필라테스 먹튀’ 사례다. 폐업을 앞두고도 장기 계약을 체결한 뒤 잠적해 소비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았다.

길어지는 내수 부진과 경쟁 심화로 인해 헬스장과 필라테스 폐업이 늘자 이같은 피해 신청이 급증하고 있다. 24일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헬스장 관련 피해 구제 신청은 2021년 2406건에서 2024년 3412건으로 1.5배 늘었다. 필라테스 관련 피해 구제 신청은 더 가파르게 늘었다. 2021년 662건에서 2024년 1036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제는 피해 구제를 받는 경우가 ‘사막에서 바늘 찾기’ 수준이란 점이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이 한국소비자원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폐업으로 구제 신청 시 환급·계약해제·계약이행·부당행위 시정 등 구제를 받은 경우는 2024년에는 275건 중 61건밖에 되지 않았다. 143건은 처리불능 상태로 끝났고, 정보제공·상담·조정신청·취하중지된 사례가 71건에 달했다. 사실상 10건 중 8건은 제대로 된 구제를 받지 못하고 끝난 것이다.
피해 처리 금액도 3430만원으로 피해 계약 금액 2억8250만원의 10% 수준에 그쳤다. 김재섭 의원은 “소비자원에 들어온 사례는 일부일 뿐”이라며 “최근 경찰 조사 등에도 적발되는 등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폐업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도 “사업자가 연락을 받지 않으면 소비자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 대부분 사건 접수도 받지 않고, 민·형사 조치 등을 대신 안내하는 편”이라며 “폐업한 경우에는 공문을 보내도 반송되기 때문에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특히 지난해 폐업으로 인한 구제 신청 중 필라테스가 142건으로 헬스장(88건)과 요가(24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필라테스가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게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필라테스는 개업이나 폐업 시 지자체 허가와 신고가 필요한 체육시설업이 아닌 자유업종으로 분류된다. 갑자기 문을 닫고 잠적해도 지자체에 관련 정보가 없어 사업자를 확인할 수 없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보증보험가입 의무화와 필라테스 체육시설 편입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은 국회에서 반년 넘게 계류 중이고,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준비 중인 정부안은 발의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소비자에게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은 ‘카드 할부’ 활용이다. 이유진 한국소비자원 팀장은 “신용카드 할부 시 잔여 금액에 즉시 할부항변권을 행사해 돌려받을 수 있다”며 “지나친 장기계약은 피하고 만약 할부가 되지 않는 가맹점은 카드사에서 민원이 많이 들어와 막았을 가능성이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