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기술 박람회인 ‘CES 2025’가 1월 6일(현지 시간)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개막했다. 소비자기술협회(CTA)는 이번 행사의 다양한 기조연설과 세션, 그리고 포럼을 통해 향후 10년을 결정지을 핵심 기술 트렌드를 제시했다. 특히, Z세대(Gen Z)·인공지능(AI)·지속 가능성·스마트 모빌리티·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섯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과 기술의 공존’이라는 미래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 젠지(Gen Z)가 이끄는 ‘새로운 기술 소비’
CES 2025 트렌드 발표에서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이제 주요 소비자에 진입한 ‘젠지(Gen Z)’의 소비 행태에 관한 것이다. CTA의 시니어 디렉터 브라이언 코미스키(Brian Comiskey)는 “1997년부터 2012년 사이에 태어난 젠지는 전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이들이 향후 기술 혁신과 시장 흐름을 결정짓는 핵심 소비층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젠지의 특징
코미스키에 따르면, 젠지의 86%가 “기술은 건강 유지에 필수”라고 답했고, 74%는 기술을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핵심 수단”으로 인식한다. 또한 젠지는 평균적으로 가구당 13개의 디지털 기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 가치에도 매우 민감해 ‘다중 지속 가능성 요소(에너지 효율성+재활용 가능 등)’를 갖춘 제품에 훨씬 높은 구매 의향을 보인다.
구매력과 온라인 소비
젠지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구분 없이 활용하는 ‘진정한 옴니채널 세대’이며, 패션·전자상거래·인터넷 연결성 등 전방위 분야에서 소비를 주도한다. 이를테면 AI 기반 가상 피팅 솔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 온라인에서의 반품률(평균 18%)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CTA의 ‘2025 산업 전망’과 미국 시장 예측
CES 2025 현장에서 공개된 CTA의 2025년 산업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 기술 시장은 전년 대비 3.2% 성장해 약 5,370억달러(537 billion USD)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코미스키는 “이 수치는 미국 내 대통령(트럼프) 관세 정책 등의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관세가 강화되면 노트북·태블릿·스마트폰 등 핵심 제품 소비가 최대 37~68%가량 줄어들 위험이 있다고 CTA는 경고했다.
- AI의 확산: 생성형 AI와 개인화
(1) 소매·쇼핑 분야에서의 AI
올해 CES에서 ’인공지능(AI)’은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CTA 조사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64%가 이미 AI 기반 쇼핑 도구를 사용해 본 경험이 있으며, 특히 생성형 AI(generative AI)를 통한 맞춤형 추천 서비스로 구매 전환율을 평균 40% 이상 높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2) 엔터프라이즈와 AI 생산성
기업용 AI 에이전트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고객 관계 관리(CRM), 급여 처리 등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여러 애플리케이션과 계정을 통합 관리하는 솔루션이 잇달아 공개되었다. 코미스키는 “AI는 이미 CES 여러 해 전부터 주요 이슈였지만, 올해는 생성형 AI가 소비자와 기업 모두를 직접적으로 변화시키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 ‘인간 안보(Human Security)’와 지속 가능성, 에너지 전환
CTA는 ‘인간 안보(Human Security)’라는 개념 아래, 환경·식량·에너지·보건 분야의 혁신을 이번 CES 2025의 핵심 테마로 내세웠다.
(1) 에너지 전환(Energy Transition)
인프라와 스마트 그리드
삼성, LG를 비롯한 여러 기업이 AI 기반 스마트 그리드 기술을 선보이며, 가정과 산업 전반에서 에너지 소비를 최적화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이튼(Eaton)은 데이터센터 냉각 에너지 효율을 40~60% 끌어올릴 신기술을 발표해 주목받았다.
친환경 에너지
오트레라 에너지(Ortera Energy) 등은 그린 수소, 태양광, 원자력 신세대 기술 등을 통해 ‘제3의 에너지 전환(화석 연료에서 무탄소 연료로)’을 가속하겠다고 밝혔다.
(2) 식량 안보(Food Security)
농업 자동화와 클라우드
쿠보타(Kubota), 캐터필러(Caterpillar) 등 농업·산업 장비 회사들은 자율주행 트랙터와 클라우드 기반 농업 솔루션을 공개했다. ‘Tech to Table(테크 투 테이블)’이라고 불리는 이 흐름은 생산 효율을 높이고 식량 낭비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스마트 모빌리티와 자율주행
올해 CES에서도 자동차·모빌리티 섹션이 크게 확장되었다. 전기차(EV)부터 항공 모빌리티(eVTOL), 자율주행(Autonomous Driving)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운송 혁신이 공개되었다.
전기차와 충전 인프라
테슬라(Tesla), 리비안(Rivian), 폭스바겐(Volkswagen) 등은 충전 시간을 단축하고 주행거리를 늘리는 배터리 솔루션을 선보였다. 미국 내 전기차 인프라가 아직은 미흡하지만, 정부와 기업이 합심해 ’충전 불안(range anxiety)’을 해소하기 위한 기술을 대거 전시했다.
자율주행 및 로보택시
웨이모(Waymo)는 500만 건 이상의 로보택시 누적 데이터를 통해 자율주행의 안정성을 시연했으며, 모빌아이(Mobileye)는 AI 기반 카메라와 칩셋을 공개해 상용차량에도 적용 가능한 확장성 있는 기술을 강조했다.
- 디지털 헬스케어와 웰빙(Wellness)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살기(Longer, Healthier Life)’라는 목표 아래, CES 2025에서는 헬스케어와 스마트 홈이 융합된 솔루션이 다수 등장했다.
스마트 헬스 기기
원격 모니터링 기기(비핏 B-Fit, 위딩스 Withings 등)를 통해 병원에서 받던 중간 검진을 가정에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GLP-1 계열 약물을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해 비만과 당뇨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릴리(Lilly)의 신제품도 관심을 모았다.
생활 속 건강 관리
OTC(Over the Counter) 디지털 보청기, AI 기반 청력 개선 안경 등은 고령층과 장애인을 위한 접근성을 높인다. 또한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비침습 스트레스 측정 기기, 자율주행 가이드 로봇 등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 양자컴퓨팅(Quantum Computing)과 미래 전망
게리 샤피로(Gary Shapiro) CTA 회장은 “인공지능이 올해 CES에서 대중적 관심을 끌었다면, 양자컴퓨팅은 향후 5~10년을 이끌 핵심 기술”이라고 언급했다. “양자컴퓨팅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치료법 발견부터 교통 체증 해결까지 다양한 문제를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로 풀어낼 잠재력이 있다”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CTA가 새롭게 마련한 ‘Quantum Means Business’ 트랙은 양자컴퓨팅의 상업적 활용 방안을 집중 조명한다. 교통·바이오테크·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자를 활용해 기업이 얻을 수 있는 효용과 시장 기회를 논의하며, “앞으로 CES에서 양자 분야 역시 AI 못지않게 화두가 될 것”이라는 게 CES 측의 전망이다.
기술이 인간으로 향할 때
CES 2025는 젠지, AI, 지속 가능성, 자율주행, 디지털 헬스케어 등 굵직한 주제들을 통해 미래 기술의 방향을 제시했다. 동시에 2025년 미국 소비자 기술 시장 전망, 관세 이슈, 그리고 양자컴퓨팅 등 한층 진화된 혁신 아젠다를 놓고 거대 글로벌 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협력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우리는 매년 CES에서 새로운 미래의 시작을 봅니다. 그러나 이는 단 한 번의 이벤트가 아니라, 인간과 기술이 함께 발전하는 연중 ‘계속되는 여정’입니다.”라는 게리 샤피로의 말처럼, CES는 앞으로도 글로벌 혁신의 장으로서 ‘인간 중심’의 기술 발전을 이끌어 갈 전망이다.
글. 바이라인네트워크
<이종철 기자> jude@byline.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