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은퇴 PC 느는데... 기부는 찔끔 왜? [Re:PC! 희망 스위치를 켜주세요①]

2025-08-31

[디지털포스트(PC사랑)·NGO저널·시장경제 공동기획]

불용PC 기부 활성화, '헌 PC에 새 생명을' 연재

AI 서비스 확대에 PC 교체 주기 빨라져

"아직 쓸만한데"... 새 PC에 밀려 퇴출

회사 밖 PC 늘어도 기부는 후퇴 '아이러니'

보안 사고 우려에 낮은 자산가치 원인

국내 대기업 20여곳... PC 기부율 1% 그쳐

보안 우려 해소할 인증제 도입 검토해야

PC 기부, 세액공제 확대 등 제도 개선 시급

[편집자주] 아직 신입 딱지도 못 뗐다. 회사에 온 지 채 3년이 안 됐다. 여전히 더 뜨겁게 달리고 싶다. 그런데 강제 퇴출이 웬 말인가.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쉽다.

정보기술(IT) 시대 필수품 PC에 대한 얘기다. PC는 기업 업무환경에 없어서는 안 될 도구다. PC 중심으로 대부분 업무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직원들 자리마다 PC가 한두 대씩 꼭 놓여있는 이유다.

하지만 PC의 퇴장은 씁쓸하다. 서너 해 숨 가쁘게 일하고 나면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다. 아름다운 이별이 쉽지 않다. "비밀을 발설하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PC의 기억장치(메모리)를 모두 파쇄한 뒤 폐기에 이르도록 한다.

물밀듯이 몰려오는 인공지능(AI) 서비스도 야속하기만 하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새 PC에 자리를 내줘야 한다. 1년도 못 버티고 자리를 넘겨주는 PC가 갈수록 늘고 있다.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회사 밖으로 나온 PC가 세상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길을 모색해 보면 어떨까. '최신', '신제품'이라는 꼬리표가 떼어졌을 뿐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PC를 선뜻 구매하기 어려운 취약계층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 주변 곳곳에 존재한다. 기업이 기증한 중고 PC로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청소년도 적지 않다.

IT 전문매체 디지털포스트(PC사랑)와 시민사회 전문지 NGO저널, 종합경제지 시장경제신문은 기업과 금융기관의 '중고 PC 기부 활성화'를 위한 공동 기사를 연재한다.

1편에서는 기업들이 PC를 폐기하는 이유를 짚고, 기부를 늘릴 대안을 제시한다. 2편에서는 PC 기부를 가로막는 주요 원인인 '보안 리스크'가 합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우려인지, 혹은 막연한 불안에 기인한 것인지 분석한다.

3편에서는 PC 기부가 실제 어떤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지, 현장 관계자들의 경험과 조언을 담을 예정이다.

[디지털포스트(PC사랑)=최종희 기자 ]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넘긴 서울 소재 한 바이오기업은 PC 교체 주기를 3년으로 정했다. 회사는 최근 이 주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무에 챗GPT와 같은 AI 서비스 활용도가 커지면서 PC 성능을 높여달라는 직원이 늘었기 때문이다.

이 회사 인사담당 임원 A는 "사무용 PC의 경우 아무리 높은 스펙을 갖췄다고 해도, 회사에서 쓰는 클라우드와 보안 시스템 등을 적용하고 나면 CPU 성능 절반 가까이가 사라진다"며 "특히 AI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PC 교체 주기는 자연스럽게 당겨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부 개발자들은 1년도 안 된 PC 교체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사무용 PC의 재산적 가치가 낮게 책정돼 있다는 점도 교체 주기 단축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바이오 분야 대기업에서 최고재무책임자(CFO)로 근무 중인 B는 "PC 감가상각 기간이 평균 3~5년에 불과하기 때문에 3년 넘게 쓴 PC의 장부가액은 제로에 가깝다"며 "200만원 미만 PC는 감가상각조차 고려하지 않고, 폐기할 때 처분손실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감가상각이란 회사 자산의 구입비(취득원가)를 1회성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내용연수에 따라 해당 기기의 재산적 가치 감소분을 매년 반영하는 회계 절차를 말한다. PC의 경우 취득원가가 낮고, 내용연수가 짧은 편이어서 재무적 관점에서 주요 관리 대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아이러니한 점은 PC 교체 주기가 줄어드는 데도 기부 수량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안 사고 우려'가 PC 기부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업들은 기부에 앞서 PC에 장착된 하드디스크, 메모리 등 저장장치를 모두 제거한다. 회사 정보가 담긴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기부 대신 폐기를 선택하는 기업이 증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 온라인 플랫폼 운영기업에서 인사팀장을 맡고 있는 C는 "회사의 정보자산인 PC를 외부에 내보낸다는 것 자체가 정보보안 관점에서는 리스크로 분류된다"며 "기부를 위해 PC에서 저장장치를 떼어낸 뒤 파쇄하는 일 자체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라고 털어놨다.

다른 회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공동기획 취재단은 지난 6월 초부터 한달여에 걸쳐 IT와 건설, 자동차, 철강 분야 국내 주요 대기업 20여곳을 대상으로 '불용 PC' 기부 여부를 확인했다. 그 결과, 기부한다는 답변은 5곳에 불과했다. 이들 회사마저도 전체 불용 PC 가운데 채 10%가 안 되는 규모만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기업은 한해 평균 1000대가 넘는 불용 PC를 쏟아내고 있지만, 그 중에서 단 한대도 기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체 조사 대상 기업들의 불용 PC 가운데 기부 비율은 1% 안팎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PC 기부가 보안 리스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기업들의 불안심리를 잠재우지 못한다면 기부를 활성화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믿을 만한 중고 PC 업체나 기부단체를 선정해 정부가 직접 인증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조언도 내놨다. 기부된 PC가 보안 사고 우려 없이 필요한 곳에 제대로 전달되려면,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신뢰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PC는 일반 가전과 가구 등을 기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과정을 거친다. 우선 PC 내 저장장치를 파쇄하고 새 저장장치로 갈아 끼운 뒤, 정상 작동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윈도우, 보안 프로그램, 오피스 프로그램과 같은 기본 소프트웨어도 설치해야 한다. PC 스펙을 일일이 파악해 수요처별 맞춤형 PC를 전달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정호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정책팀 간사는 "PC 사용 연수를 직원 간 형평성 측면에서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기업이 많다"며 "이제는 형평성보다는 자원 활용률을 높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보안 사고 우려에 기부를 주저하는 기업의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민간기업, 기부단체 등에 인증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PC 기부에 대한 세액공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삼일회계법인 임원 출신 회계사 D는 "PC를 기부하든, 폐기 후 처분손실로 처리하든 (기업 입장에서) 세무적 효과는 동일하다"며 "기부 시 장부가액이 아닌, 시가로 세액공제 해주는 등 별도의 제도가 마련돼야 기업들이 기부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부금으로 처리되는 중고 PC의 장부가액은 취득원가에서 감가상각비를 빼고 남은 금액이다. 재무적으로 의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미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중에서 실제 거래되는 PC의 시가를 기부금으로 봐준다면, 그만큼 세제 혜택이 커질 수 있다.

PC 기부에 대한 ESG 지표 개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PC 기부는 자원 재순환과 함께 사회공헌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다. 해당 항목에 대한 ESG 지표 개발은 PC 기부 활성화의 변곡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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