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을 사기 위해 새벽 오픈런을 불사하던 젊은 층의 명품 브랜드에 대한 관심이 지난해 현저히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수년 간 대중화한 명품 소비에 싫증을 느끼면서 훨씬 싼 모방품을 찾는 ‘듀프(dupe)’ 소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듀프란 영어 단어 ‘duplicate(복제하다)’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명품이나 잘 알려진 고가 제품을 모방해 만든 가성비 대체품을 뜻한다.
2일 대홍기획의 소셜 빅데이터 플랫폼 디빅스에 따르면 지난해 소셜네트워크(SNS) 상에서 오픈런의 연관어로 가장 많이 언급된 상위 50개 단어에서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롤렉스 등 명품 브랜드들이 자취를 감췄다.
디빅스는 2020년부터 매년 트위터·인스타그램·블로그·온라인커뮤니티·뉴스 기사 등에서 언급된 오픈런 연관어를 브랜드·상품·장소 기준으로 집계해왔는데, 매년 브랜드 1위를 기록했던 샤넬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가 지난해엔 모두 순위에서 사라졌다.
디빅스 분석 결과 오픈런 언급량은 2020년 2만 1318건에서 매년 급증하며 2023년 40만 5736건으로 정점을 찍은 후 지난해 34만 560건으로 줄었다. 오픈런 자체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면서 명품 브랜드를 언급한 횟수도 감소한 셈이다.
이는 명품업계가 과도하게 판매량을 늘리면서 희소성이 떨어진 점이 원인으로 꼽힌다. 샤넬의 시계&주얼리 최고경영자 프레드릭 그랑지에는 스위스 언론 르 템프와의 인터뷰에서 “명품 산업이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과도하게 상품을 유통시키면서 브랜드의 매력을 약화시켰다”면서 “앞으로 2년간은 명품업계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신 젊은 층이 관심을 보이는 것은 ‘저렴이’로 불리는 듀프 상품이다. 대표적으로 6만 3000원짜리 샤넬 립앤치크밤과 유사한 것으로 알려진 다이소의 손앤박 컬러밤(3000원)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남성용 가방인 요시디 포터 탱커 헬멧백(36만 원)과 유사한 디자인에 탄탄한 재질을 갖춘 유니클로 유틸리티백(4만 9900원)도 인기다.
이밖에 갤럭시 워치 7(35만 원)의 대체품으로 낫싱 CMF 워치 프로 2(9만 9000원)가 잘 팔리고 있다.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마이 마 01(26만 9000원) 대신 블루엘리펀트 GILDA(4만 5000원)를 선택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지난해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와 탑텐이 나란히 매출 1조 원을 돌파하고 무신사가 인기를 끌며 5대 백화점에 모두 입점한 것도 젊은 층이 가성비 제품,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으로 오래 입을 수 있는 제품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대홍기획 관계자는 “한때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다른 곳에는 돈을 아껴도 명품백 하나 정도는 아끼지 않고 사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제는 눈에 보이는 명품으로 과시하려는 분위기는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일하게 젊은 층이 지갑을 여는 분야는 여행으로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가까운 곳을 자주, 짧게 여행하려는 수요가 많다. 일본 소도시 여행이나 국내 지방의 ‘촌캉스’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여가·여행기업 놀유니버스에 따르면 일본 가고시마, 요나고, 마쓰야마 등 소도시의 지난해 항공권 예약 건수는 전년 대비 각 316%, 253%, 184% 뛰었다. 이들 도시는 한 번 갔던 장소를 다시 찾는 N차 여행의 인기 장소이기도 하다. 디빅스에 따르면 지난해 10월까지 촌캉스(촌과 바캉스의 합성어) 언급은 3만 6295건으로 2023년에 비해 74.5%늘었다.
아고다에 따르면 ‘빵지순례지’ 성심당으로 이름난 대전을 비롯해 정선, 대구, 인천, 수원 등 일반적인 관광지에서 벗어난 지역들이 여행지로 뜨고 있다.
김밥천국의 줄임말에서 착안한 김천시의 김밥축제, 상상속의 공주를 슬로건으로 내건 공주시의 공주 페스티벌 등 특산물이나 명소가 아니라 기발한 컨셉을 내건 관광지가 주목받는 현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더 싸게, 더 자주 자신만의 방식으로 쉬기 위한 여행이 올해 트렌드이며 관광보다는 현지에서 일상을 즐기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