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대출 금지로 잔금 막혀서 방법이 없으면 전매제한 풀리는 대로 분양가에 내놓을 예정입니다.” (성동구 신축 아파트 관련 커뮤니티)
정부의 고강도 대출 규제가 발표된 이후 첫 은행 영업일이었던 30일 아파트 분양을 받은 이들을 비롯해 은행 창구에서도 혼선이 빚어졌다. 특히 올해 하반기 입주를 앞둔 수도권 신축 아파트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대출 규제로 자금 조달 계획이 틀어지게 되자 한숨을 내쉬는 반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날 비대면 주택담보대출이 막히자 은행 창구로 달려온 고객도 있었다. 은행들도 갑작스러운 규제 시행에 금융당국에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묻기에 바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8일 즉각 시행키로 한 가계부채 관리방안은 이날 이후 입주자모집공고를 낸 수도권의 분양 단지의 잔금 대출이 6억원으로 한도가 제한된다. 곧 입주가 시작되는 서울 서초구의 메이플자이, 성동구의 오티에르 포레 등은 그에 앞서 입주자모집공고를 냈기 때문에 예외를 적용받지만, 아직 분양이 시작되지 않은 송파구 잠실 르엘 등은 규제 대상에 들어간다.
통상 주택 분양을 받은 후 입주 시 주택담보대출를 받거나, 전세 세입자를 받아 보증금으로 분양 잔금을 치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신규 아파트 수분양자들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로또 청약’이 한순간에 날아가게 생긴 것이다.
입주자모집공고일과 별개로, 모든 분양 단지에서 ‘조건부 전세대출’도 금지된다. 신축 주택 청약에 당첨된 수분양자가 전세 세입자를 구해 보증금으로 분양 잔금을 치르는 것이 전면 차단된 것이다. 이에 따라 전세금으로 잔금을 치르려면 대출이 전혀 없는 세입자를 구해야 하는데,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에 가깝다. 오는 7월 입주하는 성동구 라체르보푸르지오써밋, 11월 동대문구 이문아이파크자이, 12월 송파구 잠실래미안아이파크 등이 당장 영향을 받게 됐다.
동대문구의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은 A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세입자 구해서 잔금 치러야 하는데 세입자 전세대출을 막아놨으니 큰일”이라며 “아이 봐줄 부모님 댁 근처에 사느라 어쩔 수 없이 전세로 주는 건데 죄인 취급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대출 규제가 분양 단지의 매매가·분양가를 하향 조정하는 데 영향을 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도 일부 분양 단지에서의 이같은 파급 효과가 전체 수도권 주택 시장에 미칠 영향이 크지는 않다고 분석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서울 외곽·경기도 분양 단지를 중심으로 분양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매매가와 전세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향후 분양 시장에서 수요자들의 대출 사정을 고려해 분양가가 하향 조정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대출 규제가 시행된 후 첫 영업일을 맞은 이날, 은행권도 고객도 일부 혼선을 빚었다.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최대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등의 주요 내용은 이미 공유됐지만, 세부 가이드라인이 확정되지 않아 은행도 고객의 문의에 명쾌한 답을 주지 못한 사례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택대출금을 6억원으로 막아 놓은 상황에서 8억원의 전세보증금반환대출을 해줘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각 은행 담당자들이 당국에 여러 질문을 해놓고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귀띔했다.
주말 사이 대부분 은행의 비대면 대출이 막혀 수요자들이 부랴부랴 영업점을 찾기도 했다. 이날 서울시청 인근 한 은행에서 만난 30대 A씨는 “주담대 갈아타기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비대면 대출이 막혔다고 해서 급히 은행에 왔다”며 “비대면 대출 금리가 더 낮은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대출 관련한 규정 적용을 두고 논란이 일자 이날 오후 ‘계약서’ 작성이 기준이라는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금융위는 주택담보대출이든 전세대출이든 규제 시행전인 지난 27일까지 매매 계약서 또는 전세 임대차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에만 기존 규정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또 부동산 대출 규제와 관련해 전 금융권을 대상으로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이날부터 현장 점검을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와 함께 막힌 대출 수요가 사업자 대출이나 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 발생 여부도 같이 살펴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