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 최대 미술품 장터인 ‘아트바젤 홍콩 2025’가 닷새 간의 여정을 마치고 30일 막을 내렸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은 ‘낙관론’이 조심스레 거론될 정도로 관객과 판매 측면에서 회복세가 뚜렷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여전한 가운데 거장의 대형 작품만 관심을 받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올해도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온기 돌아왔다지만 ‘블루칩’만 호황
아트바젤 홍콩에 따르면 28일 VIP 사전 관람을 시작으로 개막한 올해 행사에는 9만 1000여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지난해 7만 5000명이 찾은 것과 비교해 21%가량 늘어난 셈이다.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는 42개 국가와 지역에서 240개 갤러리가 참가해 규모 면에서는 지난해와 비슷했다. 아시아·태평양 갤러리가 절반가량을 차지했고 관객들도 중국 본토와 대만, 일본, 한국 등 아시아권 컬렉터들이 대세를 이뤘다. 외신 등에 따르면 프리뷰에는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과 ‘검은신화 오공’으로 중국발 게임 열풍을 일으킨 히어로게임즈의 다니엘 우 등 큰손 컬렉터들도 여럿 참석했다.

과거처럼 미술품을 사기 위해 ‘오픈런’을 하는 등의 열광적인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유명 작품들은 견고한 판매 실적을 보였다. 첫날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2013년작 ‘무한그물[ORUPX]’이 350만 달러(약 51억 원)에 팔리며 당일 최고 판매가 기록을 세웠고, 둘째 날 프랑스계 조각가 루이스 브루주아의 작품이 200만 달러(약 30억 원)에 판매됐다. 전년도처럼 100억 원이 넘는 초고가 판매 작품은 없었지만 수십만~수백만 달러를 호가하는 작품들이 꾸준히 팔려나가며 미술 시장에 온기가 돌아왔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중소형 갤러리나 신진 작가 등 시장 전반으로 확산은 더뎠다. 한 갤러리 관계자는 “컬렉터들이 이전보다 더 보수적이고 신중해졌다”며 “과거에는 한 번에 두 세 작품씩 사들이던 컬렉터들도 이제는 ‘최고의 하나’만 사려고 한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갤러리들도 잘 팔리는 안전한 작가 위주로 적당한 가격대의 작품을 가져오는 등 ‘안전한 선택’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국 갤러리도 선방…신민 작가 수상도
한국 갤러리들도 대체로 고무적인 성과를 올렸다는 평가다. 국제갤러리는 첫날에만 박서보·하종현·이승조·김윤신 등 작가의 작품 14점을 판매했고 전체 행사기간 30점이 넘는 작품을 판매했다. 조현화랑도 이배의 작품 8점을 포함해 20여 점 가까이 판매했다. 학고재는 송현숙·정영주·윤석남 등의 작품을, 우손갤러리는 최병소·김혜련·이유진의 작품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우손갤러리 측은 “관람객 수가 예년보다 확연히 늘고 미·유럽 컬렉터도 돌아오면서 매출로 이어지는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28일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도 한국 회화는 주목받았다. 이우환의 ‘동풍(1983)’이 77만 8000달러에 낙찰돼 최고 추정가를 뛰어넘었고 박서보의 ‘묘법’과 이배의 작품도 각각 94만 달러, 17만 9000달러에 낙찰돼 최고 추정가에 근접했다. 이날 경매의 하이라이트였던 장 미셸 바스키아의 1984년작 ‘토요일 밤’은 최고 추정가에 근접한 1450만 달러(약 213억 원)에 팔렸다.

아트바젤 홍콩이 신진 작가 지원을 위해 제정한 ‘MGM 디스커버리즈 아트 어워즈’의 첫 수상자로 한국 신민(40) 작가가 선정된 것도 쾌거다. P21 갤러리와 올해 아트바젤 홍콩에 참여한 신 작가는 여성 서비스직 노동자의 현실을 상징하는 머리망에 주목한 ‘유주얼 서스펙트’ 연작으로 상금 5만 달러와 마카오 전시 기회를 얻었다.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에 대해 “경직된 사회 구조 속에서 인내하는 여성들의 자화상이자 그들에 대한 헌사”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