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 하세요?

2025-02-19

수없이 물었던 말이다. 그만큼 답해야 했던 말이기도 하다. 무슨 일을 하느냐는 말. 한국 사회에서 ‘하는 일’에 대해 묻고 답하는 것은 소속과 지위를 확인하는 수단이 된 지 오래니 물을 때였든 답할 때였든 그리 흔쾌했던 기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기어이 묻고, 들어야 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추진한 현대사 구술채록 사업 가운데 하나로, 역대 대통령을 보좌했거나 이에 관계된 일을 수행했던 이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2022년 갑작스럽게 청와대가 전면 개방됐다. 이후 청와대는 그야말로 ‘핫플레이스’가 됐다. 성역, 구중궁궐에 비유될 만큼 쉬이 속을 들여다볼 수 없었던 그곳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은 대단했다.

다만 제왕적 대통령제를 만든 문제적 공간이라 여긴 탓인지 청와대 개방은 과감함을 넘어 성급하게 진행됐다. 청와대와 그 주변 지역은 몸살을 앓았다. 청와대를 배경으로 그럴듯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된 것 이상으로 우리는 무엇을 더 얻게 되었을까. 그런 가운데 박물관은 2023~2024년 두 해에 걸쳐 근현대사 주요 공간으로 청와대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담는 기록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첫해 청와대의 입지와 공간의 역사를 되짚어 <백악산 아래 청와대 공간 이야기>를 펴낸 박물관 조사연구과에서는 이듬해 사업을 준비하며 자연스레 ‘청와대 사람들’에게 주목하게 됐다고 했다. 최고 권부이면서도 막상 정부 조직도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 청와대라는 조직을 실질적으로 돌아가게 한 사람들, 그들은 누구이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해 왔는지에 대한 공백이 컸다. 간간이 대통령을 보좌한 이들이 쓴 단행본이 출간되었지만 충분하다 할 수는 없다.

청와대 울타리 안에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비서실, 국가안보실, 경호처 등이 오래 터를 잡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구성원 대다수가 교체됐다. ‘대통령직 인수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 선거에서 새로이 대통령이 선출되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설치돼 인수인계 절차가 진행된다지만 새 정부의 정책 기조를 설정하고 새로운 조직을 꾸리기 위한 준비 과정이지 ‘물려받고 넘겨줌’이라는 인수인계의 본뜻과는 거리가 있다. 실상 청와대에는 ‘이것이 청와대의 전통이고 문화’라 할 만한 것이 없다.

한 정권 내에서도 변화가 적지 않았다. 특히 비서실은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잘 이해하는 이들이 전문 임기제 형식, 소위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요직에 임명된다. 한편 ‘대통령비서실 직제’에 정원은 규정돼 있지만 하부조직과 그 분장사무는 비서실장이 정한다고 명시돼 있다. 좋게 보면 유연한, 비판적으로 보면 변동성이 큰 조직이다. 한 인사는 이러한 청와대의 특수성을 두고 대통령이 중심이 된 거대한 ‘태스크 포스(TF)’라 표현했다.

구술채록에 적합한 인물을 선정하고 섭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실상 실무자의 면면을 알기 힘들었고, 구술을 완곡히 거절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저런 부담감을 무릅쓰고 청와대 생활상을 기록하는 일의 필요성에 공감해 준 이들이 있었다. 경비·경호·안보·민정·연설·의전·통역·조경·조리·홍보 등 저마다 전문성이 도드라지는 직무를 맡아 일한 열다섯 명이 구술에 참여했고, 그 이야기를 엮어 <청와대로 출근한 사람들>이 발간됐다. <청와대로 출근한 사람들>은 한때 ‘청와대’라는 한마디로 뒷말을 생략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공치사가 아닌 직업인으로서 청와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빙산의 일각 또는 수박 겉핥기 수준일지 모른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진행한 일이기도 하다. 부디 청와대라는 공간을 역사·문화적으로 기록하는 유의미한 시작점이 되길 바란다.

채록자로서 나는 이번 작업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어지러운 일들과 자꾸만 중첩된다.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국민을 섬기고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해 나가고 있는지. 기밀이고 보안이 필요했던 많은 것들은 무시로 흘러나갔고, 정작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들은 필요 이상으로 쉬쉬한 시절에 대한 반성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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