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퇴직한 미국 상장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수가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내년 도널드 트럼프 2기가 시작되면 경영 환경이 어려워질 것이란 판단에서 조기 은퇴를 하거나 규제가 덜 까다로운 비상장기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FT는 컨설팅업체 챌린저 그레이 자료를 인용해 올해 1∼11월 퇴직한 미국 상장기업 CEO가 327명으로, 기존 연간 최다 기록인 2019년의 312명을 이미 초과했다고 전했다. 대표적으로 보잉의 데이브 칼훈, 인텔의 팻 겔싱어, 나이키의 존 도나휴 등이 올해 퇴직했다.
특히 조기 퇴진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었다. 컨설팅업체 러셀 레이놀즈에 따르면 올해 3분기에 퇴직한 CEO들 중에서 8명은 3년을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으며, 이는 조기 퇴진 CEO 수로는 2019년 이래 가장 많다.
이 때문에 CEO들이 내년에 찾아올 파고를 두려워 해 예상보다 이른 퇴직을 선택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관세를 대폭 인상하며 자유무역에 지각변동을 예고해 글로벌 공급망에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의 CEO들은 골칫거리를 떠안느니 차라리 은퇴를 택한다는 것이다.
올해 주식 시장 활황이 CEO들의 주식 매각 및 은퇴 결정에 힘을 보탰다는 관측도 나온다. FT가 인용한 의결권 행사 자문사 '기관주주서비스'(ISS)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S&P 500 기업 CEO가 받은 보상의 중간값(median)은 1560만 달러(270억 원)로 사상 최고였다. 이는 작년보다 100만 달러(15억 원) 많은 액수다. 대부분의 CEO가 현금보다 회사 주식으로 보상을 받는 데다 올해 미국 증시가 활황이었기 때문에 금액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상장기업 CEO가 까다로운 규제를 피해 비상장기업 임원 자리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칼라일이나 KKR 등 대형 사모펀드들은 상장기업 CEO 출신 임원들을 고문으로 고용해 상당한 급여를 지급하기도 한다. CEO뿐만 아니라 최고재무책임자(CFO)도 퇴직하는 사례가 늘었다.
CEO뿐만 아니라 최고재무책임자(CFO)도 퇴직하는 사례가 늘었다.
12월 데이터레일스 보고서는 올해 미국의 상장 대기업 CFO들의 평균 재임 기간은 3년을 조금 넘는 정도로, 2년 전의 3.5년보다 짧아졌다고 짚었다. CFO의 퇴직 사유 중 CEO로 승진해서 CFO를 그만두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미국 상장 대기업 중 2018년부터 2023년까지 CFO를 3번 갈아치운 회사는 152개에 달했다. 여기엔 달러제너럴, 익스피디어, 언더아머 등이 포함됐다.